모네 빛을 그리다Ⅱ클로드 모네, 두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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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 빛을 그리다Ⅱ클로드 모네, 두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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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UX1 컨설팅 그룹원들과 함께 본다빈치 뮤지엄에서 전시 중인 「모네 빛을 그리다 : 두 번째 이야기」를 다녀왔습니다. 2016년에 이어 벌써 두 번째 시즌을 맞이한 만큼 이미 많은 분들이 아실 텐데요. 본 전시는 전통적인 서양회화 작가의 전시와는 조금 다른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간단히 소개하면, 모네의 회화작품을 모티브로 한 비디오, 음악, 공간 연출 등 다양한 장르의 디지털 예술을 융합한, 이른 바 컨버전스 미디어아트 전시라고 할 수 있겠네요.

01[전시회 포스터ㅣ출처: 본다빈치 뮤지엄 홈페이지]

 

관람 전, 제가 아는 것이라고는 작가의 명성과 낯이 익은 몇몇 작품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런 저에게도 굉장히 흥미로운 전시였습니다. 좀 더 자세한 감상을 풀기 전에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관람 전에 작가나 작품에 대해 얼마나 알고 가시나요?”

다양한 대답이 나오리라 예상되는데요. 평소 해당 분야에 대해 박식한 분이 계실 수도 있고, 자녀의 교육을 돕고자, 혹은 과제를 하기 위한 목적으로 단기간에 열심히 공부하는 분도 계실 듯합니다. 또 저처럼 관람 전에 별다른 사전지식 없이 블로그 몇 편을 훑으며, 관람을 결정할 만큼 흥미로운지 아닌지 정도만 파악하는 분도 계시겠죠. 애써 갔다가 발길을 돌리는 일이 없도록 관람 시간, 휴관일 정도만 파악하시는 분도 계실 테고, 관람 후의 활동을 계획하기 위해 주위의 맛집을 조사하는 분들도 계시겠죠.

02[전시장을 찾는 다양한 유형의 관람객들]

이처럼 각자의 방법으로 전시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찾아보실 텐데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작품에 대해 아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 의미를 곱씹는 재미가 뒤따르리라 생각됩니다. 그러한 사유가 우리가 애써 시간을 내어 전시장을 찾는 이유가 아닐까요?

하지만 바로 이 점이 많은 사람들이 전시에 대해 취미를 붙이지 못하는 이유가 되리라 추측합니다. 가장 대중적인 문화활동 중의 하나인 영화와 비교해볼까요? 영화는 사건의 배경이나 인물들의 숨은 내력을 행동과 대화에 녹여냅니다. 때문에 관람객이 이를 파악하는 과정이 자연스럽죠. 또, 다채로운 영상 언어가 포함된 내러티브 구조는 연출자의 의도를 파악하기에도 매우 용이해 보입니다. 미술작품의 소재와 기법, 또는 색채를 통해 작가의 고민이나 관점을 짐작하기보다는 말이죠. 물론 전시 기획자의 변과 전시장 곳곳에 프린트된 작품 설명이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는 합니다만, 가만히 앉아서 흘러가는 화면들을 보는 것과 비교하면 누구에게는 수고로운 작업일 수 있다는 것이죠.

정리하면,

  1. 작품의 감상과 그 배경지식을 익히는 과정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2. 또는, 관련 지식을 학습하는 방식이 평소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과 다르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미술 전시를 어려워하거나 따분해하는 것이겠지요.

작가의 의도와 이를 이해하려는 관람객의 의지 사이에 바로 이 전시의 매력이 숨어있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인상주의는 사실, 감상하기에 그리 녹록한 화풍은 아닙니다. 사물의 형태와 색을 객관적인 속성이 아니라, 화가의 눈에 보이는 주관적인 자극 그대로 표현하는 기법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죠. 고전주의 작품과 비교했을 때, 원근감이 사라진 평면적인 화면 구성에 정확한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개체들이 오로지 색으로만 표현되어 있어 저 같은 미알못에겐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 간극에 바로 이 전시의 기획이 빛을 발합니다.

03[일몰의 항구 풍경을 그린 고전주의 작품과 일출의 항구 풍경을 그린 인상주의 작품] (좌) 지중해항의 적막, 1770ㅣ출처: Wikimedia commons
(우) 일출: 인상, 1872ㅣ출처: Wikimedia commons

04[센강의 아침, 1898ㅣ출처: Wikimedia commons]

 

우선 1897년 작 「센강의 아침」을 보시죠. 제목을 미루어 보아 이른 아침의 센 강을 그렸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요. 강둑의 흐드러진 나뭇잎이 강물의 반영과 엉키어 짙은 초록색으로 어지러이 칠해져 있습니다.

이를 「모네 빛을 그리다 :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영상으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유사한 이미지를 차용했지만 조금 더 실제 풍경을 추측할 수 있도록 세밀하게 묘사되었죠. 또 관망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 미세한 변화를 더 했습니다. 영상이 재생되는 동안 짙은 안개가 수면 위로 퍼져 나가는 모습이 보이는데요. 은은한 아침 햇살을 받은 강물이 물비늘로 일렁이기도 합니다. 양팔을 쓸어내리며 새벽의 한기를 쫓는 화가의 모습이 선한 풍경이랄까요. 한동안 바람을 따라 흔들리던 적적한 풍경 위로 원작이 천천히 오버레이 되며 영상이 끝납니다.

05[일본식 다리와 수련 연못, 1897ㅣ출처: Wikimedia commons]

 

다음 작품은 모네의 지베르니 정원에 놓인 다리를 묘사한 작품, 「일본식 다리와 수련 연못」입니다. 우거진 초목과 수련들로 녹음이 짙은 정원에 놓인 아치형 다리가 보이네요.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싱싱함이 느껴지는 초록빛입니다.

그럼 다시 전시된 영상에 대한 나름의 묘사를 들어보시죠. 수초가 바람에 흔들리고 수련 위로는 나비떼가 날아다닙니다. 바람이 정원을 훑고 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정원 한 구석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있는 기분입니다. 좀 더 기다리면 남녀 커플 하나가 다리를 지나가는데요. 다리의 가운데에 다다라서 이쪽을 바라보며 손을 흔듭니다. 어쩐지 여행지에서 마주칠만한 풍경처럼 느껴지지 않나요?

저는 영상을 통해 단번에 작품에 대한 대단한 식견을 가지진 못했지만, 적어도 모네가 캔버스에 담고자 했던 풍경을 실제로 본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로 인해 원작 역시도 좀 더 친숙하게 감상할 수 있었죠. 작가가 담고자 했던 자연과 그의 묘사를 함께 살핌으로써 전시장 벽면이나 도록에 적힌 설명보다도 더 자연스러운 이해와 공감을 느꼈습니다.

주관사 측의 허락을 구하지 못해 영상을 글로만 설명드리는 것이 아쉽습니다만, 시간이 되시면 실제로 관람하시길 권합니다. 혹 제 묘사가 낯간지러울 수도 있지만, 실제로 보시면 예술작품을 보러 왔다는 흥분과 지베르니 정원의 모티브들을 응용한 조형물, 전시장 곳곳에 낮게 깔린 서정적인 음악들이 분명 여러분을 감상적으로 만들 겁니다. 마치 자신이 모네가 된 것처럼 일 년 중 다양한 계절과 하루 중 다양한 빛깔의 시간에 맞춰 산책을 즐기는 기분으로 말이죠. 바로 모네가 염원했던, 예술을 통한 휴식과 안식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전시로서 제 몫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06[전시장 풍경들ㅣ출처: 본다빈치 뮤지엄 홈페이지]

 

전시 전반으로 보면 모네의 화풍을 빌려, 빛에 반응하여 갖가지 아름다운 빛깔을 뽐내는 풍경들로 관람객의 마음에 평화를 불어놓고자 하는 기획 의도가 돋보입니다. 또 개별 영상을 놓고 보자면 각 원작들에 맞춰 어떠한 연출을 가미할 것인지 고민한 흔적들이 보이네요. 「라 에브 곳에 썰물」은 불멍만큼이나 중독성 높은 파도멍을 때릴(?) 수 있도록 연출한 반면, 「죽음의 침대에 까미유 모네」는 꺼져가는 생명의 마지막 순간을 표현하기 위해 시시각각 변하는 빛줄기가 침상에서 피어오르는 먼지를 비추며 아련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07(좌) 라 에브 곳에 썰물, 1864ㅣ출처: Wikimedia commons
(우) 죽음의 침대에 까미유 모네, 1879ㅣ출처: Wikimedia commons

 

이러한 연출 모두가 작가의 의도를 소상히 글로 옮기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라고 봐도 좋겠지요.

글의 초반에 전시장을 찾는 다양한 유형에 대해서 잠깐 언급했는데요. 앞으로는 좀 더 많은 미술작품들이 저 같이 사전지식이 없는 관람객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방안들이 마련될 듯합니다. 과거에 책으로 작품을 공부하며 관람을 준비하던 방식은 어쩐지 디지털 네이티브에게는 번거롭고 따분한 방식처럼 느껴지니까요.

19세기 후반 인상주의 화파가 도시인의 지각 방식에 발맞춰 나타난 것처럼 전시장의 풍경에도 디지털 콘텐츠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바람이 일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렇게 되면 유독 미대 언니, 오빠가 많은 UX 업계에서도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전시 기획에 관심을 갖게 된 이후 발견한 또 하나의 신선한 장치를 소개하며 글을 마치려 합니다. 아래는 「최랄라 : 랄라 살롱」에서 찍은 사진인데요. 작가주의 사진작품이 어려워 빠르게 훑고 있는 와중에 제 시선을 사로잡은 작가의 코멘트입니다.

08[작품활동의 내력을 설명하는 작가의 코멘트]

 

인스타그램에서나 어울릴 법한 짧은 문장으로 작가가 맞이했던 중요한 전환점을 설명하네요. 전시장의 초입부에 길게 써 붙인 안내문보다 더 함축적이고 강렬하게 느껴집니다. 안목이 없는 저로서도 이 짧은 글귀를 통해 작품의 흐름을 손쉽게 캐치할 수 있었다면 지나친 자신감일까요?

09[전시장 곳곳에 적힌 작가의 코멘트들ㅣ출처: 네이버 블로그]

 

– UX1컨설팅 그룹 이재웅

 

2 Comments

  1. 김상락 2018년 01월 10일 at 5:37 오후 - Reply

    얼마전,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 갔을때 그림과 조형물만 쭉 전시되어 있는걸 보고는
    ‘오디오 가이드나 큐레이터 없이는 정말 이해하기 힘들겠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본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보고 있어도 무엇을 보고 있는지 어떤의도로 그린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화가의 자세한 인물 묘사에 감탄하고
    그 당시 사람들의 종교관을 조금 이해 했을뿐
    작품자체를 이해하지는 못한것 같습니다.

    위의 칼럼중
    ‘가만히 앉아서 흘러가는 화면들을 보는 것과 비교하면 누구에게는 수고로운 작업일 수 있다는 것이죠.’
    라는 문장이 미술작품과 영화와의 차이를 설명하는 핵심 문장인것 같습니다.ㅎ
    저도 프라도 미술관을 관람하면서 굉장히 수고스럽게 상상을 했었거든요ㅎ

    ‘모네 빛을 그리다’ 전시회는 가보지 못했지만
    첨부해주신 사진과 글로 예측하건데 다양한 영상과 소리로
    관람객에게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을 제공해 주는것 같습니다.
    이러한 전시가
    프라도나 루브르, 바티칸, 대영박물관 등 규모가 큰 곳에서는 제약이 있겠지만
    개인전이나 신진 작가들의 전시에는
    작품을 이해하기 적합한 형태로 자리매김 했으면 좋겠네요ㅎ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현대 미술관과 박물관도 조금의 변화가 있어야
    지속적인 관람객 유치에 더욱 탄력을 받을 것 같습니다.

    • blogadmin 2018년 01월 24일 at 10:52 오전 - Reply

      안녕하세요.
      공감가는 정성스러운 댓글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저희 Rightbrain lab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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