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림화산(風林火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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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의 대표적인 무장으로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이 있습니다.
지금의 야마나시현에 해당하는 가이 지방의 영주였던 그는 운명의 호적수인 우에스기 겐신과 더불어 관동지방의 패권을 다툴 정도로 군략이 뛰어난 대다이묘였으나, 종국에는 오다 노부나가-도쿠가와 이에야스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급사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수많은 전국시대 무장들 가운데에서도 오다 노부나가 다음으로 다케다 신겐을 손꼽는데 마치 삼국지에서 유비, 조조, 손권을 꼽는 것과 유사합니다.

뜬금없이 일본 전국시대 이야기를 꺼낸 것은 다케다 신겐의 풍림화산(風林火山)이라는 병법을 소개하고자 함입니다. 풍림화산은 ‘바람처럼 빠르게, 숲처럼 고요하게, 불길처럼 맹렬하게, 산처럼 묵직하게(其疾如風 其徐如林 侵掠如火 不動如山)”‘라는 뜻으로 손자병법 군쟁(軍爭)에 등장하는 군략입니다.
아마 손자가 하늘에서 내려다봤다면 자신의 군략을 가장 잘 펼친 장수로 남북조 시대의 ‘진경지’와 더불어 다케다 신겐을 꼽았지 않았을까 합니다. 다케다 신겐은 손자의 풍림화산에 깊은 감영을 받아서 風, 林, 火, 山을 한 글자씩 군기로 만들었으며 각각의 군기를 대표하는 부대를 운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風에 해당하는 기병부대는 질풍처럼 날쌔게 기선을 제압하고 林에 해당하는 보병부대는 숨처럼 고요하게 적들의 허점을 찔러 침투합니다.
다케다 신겐이 만든 풍림화산 전략은 결국에 오다 노부나가의 삼단 철포부대에 의해서 격퇴됐지만, 일본인들은 아직까지 그를 ‘가이의 호랑이’, ‘일본 최고의 전략가’로 꼽고 있습니다.
다케다 신겐의 죽음은 일본의 영화감독 구로자와 아키라의 영화 ‘카게무샤’의 소재로 다뤄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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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카게무샤 (Shadow Warrior, 1980)>

적벽대전을 앞두고 오나라를 찾아간 제갈량은 오나라의 대도독 주유와 100만에 가까운 위나라 조조 군대의 남침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 의논합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존경과 질시가 있었던 모양인지 각자의 생각을 손바닥에 적기로 합니다. (이런 에피소드는 중국사에서 흔히 등장합니다.) 결과는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화(火)였습니다. 전략이 세워지자 바로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고민하고, 제갈량은 위나라의 수군을 하나로 묶는 방법을, 주유는 하나로 묶인 위나라 수군을 불로 공격할 방법을 고민합니다. 그 뒤에 일어난 세부적인 설명은 이 글의 논조와 맞지 않기 때문에 생략하겠지만, 나관중이 꾸며 낸 이야기가 대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어찌 됐든 역사적으로도 조조의 백만 대군(사실 30~40만 명으로 추정)은 적벽에서 오나라에 크게 패하는 바람에 장강 이남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야욕을 접게 되고, 형주 지방은 일시적으로나마 유비 세력의 근거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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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적벽대전 – 거대한 전쟁의 시작 (Red Cliff, 2008)>

앞의 두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확고부동한 전략을 먼저 세우고,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그다음에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가끔 ‘현실적’, ‘실무적’이라는 단어를 빌어서 전략이나 컨셉은 생략한 채 전술적 방안만 모색하는 기업들을 만나게 됩니다. 명확한 전략 없이 전술을 세우는 것은 앞만 보고 걷는 당나귀의 우매함에 비할 만합니다. 성실함과 열정만으로도 과연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바로 움직이긴 해야 하는데, 예산도 비전도 없으니까 당장 실현 가능한 변화만 소소하게 실행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요? 아니면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으니까 앞으로도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시대는 빠르게 변화되고 있고, 조만간 급격한 변화의 물결이 모든 산업계를 강타할 것이 뻔한데, 전략은 없이 전술만 고집하는 기업들에 따끔한 일침을 가하고 싶습니다. 앞의 든 이야기들이 역사책에 나오는 케케묵은 고사라서 공감이 안 되시거나 또는 ‘우리는, 나는 안 그렇다’고 생각하실 분들을 위해서 여기 그 예시를 들어 살펴보고자 합니다.

 

– 멋진 헬스케어 앱을 만들겠다 (실제 사용자들이 일상에서 건강을 관리하고, 행동하며, 건강에 대해서 우려하는 전반적인 경험은 고려하지 않고, 앱에만 집중)

 

– 브랜딩과 커머스가 잘 어우러진 웹사이트를 만들겠다 (사용자들의 방문 계기와 기대하는 가치는 고려하지 않고, 웹사이트에만 집중)

 

– 고프로에 대항할 멋진 기능을 갖춘 액티비티캠을 만들겠다 (사용자의 변화되는 라이프스타일, 카메라/촬영에 대한 인식, 사진 관리/공유 트랜드는 고려하지 않고, 제품에만 집중)

 

전략을 먼저 고려한다면 위 3가지 예시는 다음과 바뀔 수 있을 것입니다.

 

– 우리는 사용자의 건강 관리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할까요? 그 역할에 따른 우리 서비스의 포지셔닝은? 그래서 우리는 뭘 만들고 어떤 인프라, 플랫폼을 갖춰야 할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은? 그래서 필요한 파트너는 어디일까요?

 

– 사용자들이 우리와 같은 웹사이트에 방문하는 동기는 무엇일까요? 어떤 컨텍스트에서 그러한 동기가 만들어질까요? 그 동기를 확대시킬 방안은? 그들이 이미 얻고 있었던 가치와 우리만이 제공할 수 있는 가치는? 그래서 우리 웹사이트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 변화되는 트랜드 속에서 앞으로의 액티비티캠은 어떻게 변화될까요? 굳이 액티비티캠이어야 할까요? 앞으로 사용자들은 일상이나 여가활동 중에 어떤 식으로 영상을 찍고 관리하고 공유하게 될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뭘 만들어야 할까요?

 

먼저 좋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조사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다케다 신겐의 풍림화산(風林火山)이나, 주유-제갈공명 커플의 화(火)와 같은 전략이 도출되어야 합니다. 뻔한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위에서 시키니까 하는 것이라 무조건 해야 한다면 할 말 없지만, 그것을 바꿀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안이한 생각에서 당장 벗어나야 합니다.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어렵다면 라이트브레인 UX1 컨설팅그룹에서 얼마든지 ‘무상으로’ 도와 드릴 수 있습니다.

며칠 전 열린 ‘TNW 컨퍼런스 유럽 2017’(TNW Conference Europe 2017)에서 우리나라를 세계 스타트업의 성장을 도울 차세대 엔진으로 꼽았지만, 아는 사람이라면 다 그 기사를 비웃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누가 봐도 우리나라의 혁신 역량은 아직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해서도, 원천 기술 개발 능력이 부족해서도, 소프트웨어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좋은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나라에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회사들이 속속 나타나길 기대해 봅니다.

 

– UX1 컨설팅그룹 조성봉

 

* 타이틀 이미지 출처 http://www.nhk.or.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