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서 온 현장 직원과 금성에서 온 본사 직원’

‘화성에서 온 현장 직원과 금성에서 온 본사 직원’

‘화성에서 온 현장 직원과 금성에서 온 본사 직원’
Category
Share Story

UX 컨설턴트로 일을 하다 보면 교과서적인 UX 디자인 활동(예: 필드 리서치) 뿐만 아니라 해당 기업의 비즈니스 내용과 시장환경, 가치 사슬, 기업문화, 변화를 둘러싼 갈등도 같이 파악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직장인들이 자신의 역할과 지위에 따라서 얼마나 다른 사고방식 체계를 가지고 있는 지 알게 될 뿐더러 업무 특성과 사고방식의 체계 간에는 굉장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업무 특성에 의해서 사고방식 체계가 변한다고 말씀 드렸는데, 이는 모든 사고방식 체계, 예를 들어 개인의 가치관이나 회사 내에서의 비전, 직업적인 태도까지 그렇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다음 3가지입니다.
Tempo(속도감), Tension(긴장감), Tangibility(현실성)

기업의 임직원들은 본사와 현장, 생산직과 사무직, 영업직과 관리직 등으로 양분시킬 수 있습니다.
사실 이거다 저거다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이 무리지만 우리는 그렇게 업무를 나누는 데 익숙해 있고, 실제 이해관계자 인터뷰를 해봐도 이러한 사고가 직장인들의 멘탈 모델에 뿌리 박혀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 의아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지만, 글의 제목도 ‘화성에서 온 현장 직원과 금성에서 온 본사 직원’입니다.

저는 하나의 조직을 맡고 있는 이사라는 직급을 달고 있지만, 직원 수가 아직 80명 정도인 중소기업이기 때문에 현장 직원과 본사 직원의 입장을 나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동안 많은 기업들을 컨설팅 해오면서 들어 온 이야기들이 이 글에 영감을 주었습니다.

이 글이 부디 조직 내에서 매번 부딪힐 수 있는 다양한 상황 앞에서,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시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아무쪼록 서로간의 오해들이 개선되기를 기대합니다.

Tempo (속도감)

속도감은 본사 직원과 현장 직원을 구분 짓는 가장 큰 차이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현장의 속도감이 더 빠릅니다.

현장 직원들은 본사 직원들을 답답하게 여깁니다.
“늑장을 부리는 바람에 될 일도 안되게 만든다”거나 “당장 처리해야 하는데 왜 원리원칙을 들먹이느냐”는 얘기를 종종 합니다.
현장은 유연하게 굴러가야 하는데, 본사 직원들이 사규나 기존 사례를 들먹이면서 자신의 발목을 붙잡는다는 피해망상이 있는 것이죠.

본사 직원들은 사실 Tempo의 의미를 거의 느끼지 못하는 편입니다.
자신과 비교할 만한 대상들이 어차피 본사 직원들이기 때문에 일의 부하나 복잡성에서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속도감의 차이는 거의 못 느끼기 때문입니다.

현장 직원이 갑작스레 요청을 해오거나 변칙적인 일 처리를 요구할 경우에는 “이 인간이 또 이러네?”, “항상 이 사람이 말썽이야”하고 개별 사람의 문제로 치부하고 맙니다.

갑자기 들이닥친 일을 빨리 처리해야 하는 현장 직원은 ‘유연한 업무처리’를,
정해진 룰과 체계에 기반하여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본사 직원은 ‘원칙대로’를 주장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현장 직원은 매번 달라지는 업무들을 처리해야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업무 중에 실수가 있을 수 있는데, 비교적 정해진 일들을 정해진 매뉴얼대로 처리하는 본사 직원들이 보기에는 ‘실수 투성이’, ‘덤벙거리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Tension(긴장감)

본사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정해진 수순에 따라 일정이 흘러갑니다.
일이 한꺼번에 몰리는 경우조차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현장은 갑작스런 돌발상황이 수시로 발생합니다.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등장하여 밤을 세우거나 경비를 초과 지출하거나 누군가와 얼굴을 붉히는 일들이 수시로 일어납니다.
(현장 직원 전부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협력사와의 업무 비중이 높거나 프로젝트에 자주 참여하는 분들은 대부분 이에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성격의 현장 직원들은 자연히 업무에서의 긴장감이 높고, 운동을 하거나 취미생활을 하는 등의 규칙적인 일상을 보내기가 어렵습니다.

본사 직원들이 규칙적인(routine) 일상을 보낼 수 있는 데 비해서 현장 직원들은 수시로 달라지는 상황에 미리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운동은 커녕 다음주에 친구와 약속을 잡는 것도 애매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을 감내하는 것은 그 사람의 직업적인 소명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안타깝게 생각할 필요가 없지만, 문제는 Tension이 다른 본사 직원과 마찰이 일어날 때입니다.

예를 들어 지방 파견을 나간다고 했을 때,
파견 당사자인 현장 직원은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고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을 찾기를 원합니다.
이 때 본사 직원이 경비 절감이나 사규 원칙만 주장한다면 현장 직원은 마음이 고울 리가 없겠죠.

본사 직원은 멀리까지 나가서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현장 직원의 고충을 이해해줘야 합니다.
그게 그 사람이 해야 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나중에 술을 한잔 하며 푼다고 해도 근본적인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습니다.

Tangibility(현실성)

일반적으로 본사 직원은 생각의 폭이 넓고 안목을 멀리까지 내다 봅니다.
현장 직원은 단위 업무에 쫓기느라 그럴 여유가 없는 편이죠.

그러다 보니 본사 직원은 다른 여러 가지 변수들을 고려해서 의사결정을 하려 하고, 현장 직원은 현실적인 제약과 장애물들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 됩니다.

한 쪽은 “생각이 짧다”, “왜 이렇게 매사에 부정적이냐?”고 생각할 수 있고, 다른 한 쪽에서는 “당신이 현장을 알어?”,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할 줄 알지?”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것이죠.

오히려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본사 직원과 현장 직원이 공동으로 하는 일에 있어서 현장 직원은 일의 결과가 미칠 영향을 본인이 감내해야 하기 때문에 생각이 더 깊을 수 있습니다.

본사 직원은 눈 앞의 가시적인 효과만 생각하다 보니까 상대적으로 ‘생각이 짧을’ 수 있습니다.
본사 직원은 “해서 나쁠 게 없잖아?”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장 직원 입장에서는 “아까운 기회 비용을 그렇게 써버리고 나면 뒷감당은 당신이 질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죠.

이 경우에는 대부분 현장 직원이 맞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과서적인 접근은 교과서에서나 가능한 법이니까요.

본사 직원은 구체적인 일을 벌리기 전에 현장 직원에게 먼저 목적이나 의도를 이야기하고 의견을 구하는 식으로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하는 게 필요합니다.

마치며

저 또한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까 위에서 얘기한 3가지 T의 이슈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어쩔 때는 본사 직원 입장이 돼서 현장에 나간 직원들의 무리한 요구에 놀랄 때도 있고, 반대로 어쩔 때는 현장 직원의 입장에서 본사 직원의 고지식한 주장에 눈살을 찌푸릴 때도 있습니다.

서로가 좀 더 상대방의 입장을 잘 이해해야 한다는 ‘하나마나한 이야기’ 대신에 위와 같은 차이점을 명확하게 알고 서로 입장을 바꿔 이해하려 노력한다면, 직장 생활이 조금은 더 즐거워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 UX1 컨설팅그룹 조성봉

 

* 메인이미지 출처. http://www.mediate.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