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를 널리 이롭게 하다’, 건축과 UX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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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를 널리 이롭게 하다’, 건축과 UX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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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도였던 대학시절 건축학 개론 교수님이 늘 하시던 말이 있습니다.
‘건축이란,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 이라는 말이었는데요.
기획자로써 ‘사용자 경험 디자인’ 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먼저 이 말이 떠올랐고,  “건축가와 UX 디자이너가 추구하는 본질은 결국 사람(사용자)으로 귀결될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UX 디자이너와 건축가가 사고하는 방식은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들이 디자인하는 대상이 ‘사람’이라는 공통점과,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좀 더 높은 가치를 제공해 줄까’ 하는 공통된 질문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UX 디자인이라는 말이 흘러 넘치는 이 시대에 어딘들 UX가 적용되지 않겠냐 마는 이번 글에서는 건축이라는 시선으로 UX 디자인을 바라보고 의미를 파악해 보고자 합니다.

본질적 의미의 사용자 경험 디자인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한다는 것이 무슨 말일까요?
이 막연한 물음에 대한 답을 ‘정립된 개념으로써의 사용자 경험 디자인’이 아닌 조금 더 본질적인 측면에서 의미를 살펴보고, 이야기 해 보고자 합니다.

사용자 경험 디자인이 지닌 본질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어쩌면 이는 인류가 도구를 만들 무렵부터 이어져 오던 질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쓰기 좋은’, ‘살기 좋은’, ‘불편하지 않은’ 등의 문장으로 우리 삶과 늘 가까이 있던 질문이라는 것이죠.
어떻게 만들면 이 물건을 쓰는 사람들이 조금 더 편하게 쓸까?
어떻게 지으면 이 건물에 사는 사람들이 보다 행복하게 살까?
이러한 질문들이 바로 사용자 경험 디자인의 서두이자 마침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건축에서의 사용자 경험 디자인

건축을 흔히 종합예술이라고 표현합니다.
선과 면의 지적인 조합, 구조설계를 통한 아늑한 공간배치, 구조물의 질감이나 미려한 색상 등의 구조적, 미적 요소가 모두 녹아있는 결정체가 건축이기 때문입니다.

건축가는 위에 나열한 구조적, 미적 요소를 고려하기 이전에 이 건물을 누가, 어떠한 목적으로 사용할 것이며,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파악하고자 할 것입니다.
사용자(User)와 주변환경(Context), 그들의 원하는 것(Needs)이 무엇인지 알아낸 후에야 비로소 부가적인 요소를 고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용자(거주자)의 니즈를 알아낸 다는 것은 건물을 설계하는 데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니즈를 고려하지 못한 건축물은 어쩌면 아무런 의미 없는 조형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용자의 니즈는 크게 세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 구체화된 니즈(Expressed Needs), 암묵적인 니즈(Tacit Needs), 잠재된 니즈(Latent Needs)

Iceberg above and below water level

[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UX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

예를 들면,
“거실에 따뜻한 햇빛이 잘 들어오면 좋겠어요”
“주방 한쪽 벽은 북유럽풍 타일이 붙였으면 좋겠어요”와 같이 사용자가 직접 표현하는 구체화된 니즈(Expressed Needs)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는,
“거실에서 따뜻한 햇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큰 창과 함께 천장에 유리로 된 중정을 두면 어떨까요?”
“북유럽풍의 타일이 붙는 벽 방향은 바깥 뷰가 예쁘니 작은 창을 내면 어떨까요?” 와 같이 쉽게 설명은 못하지만 누군가 이야기 했을 때 기꺼이 동조하는 암묵적인 니즈(Tacit Needs),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 알지 못하는 잠재된 니즈(Latent Needs)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이죠.

눈에 보이는 니즈만 해결해 주는 것은 기능적 효율의 증가와 사용성, 심미성을 높이는 정도의 만족감만 전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용자의 환경(Context)과 인간관계, 상황을 둘러싼 총체적인 경험을 고려하여 잠재된 니즈를 파악해 내고 해결할 수 있다면, 사용자의 만족도를 높이는 정도가 아닌 건축물 자체의 가치가 재평가될 수 있는 계기가 될 정도의 힘 낼수도 있습니다.

“잠재된 니즈를 찾게 되면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서비스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잠재된 니즈를 알기는 어렵지만 일단 알게 되면 막강한 위력을 발휘한다. 경쟁사들이 아직도 시도하지 못한 ‘탁월한 서비스’를 만들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남들이 다 아는 니즈를 다시 밝혀봤자 혁신을 디자인하지는 못한다. 남들이 모르는 니즈를 찾아내야 한다. 어떻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론이 UX 디자인이다.”
라이트브레인 UX1컨설팅 그룹 조성봉 이사의 「이것이 UX디자인이다」 中

근대건축의 사용자 경험 디자인

사실 근대 이전의 서양 건축물은 사용자 경험 디자인이 충실히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건축물이란 사회적 규범이고, 소통의 창구이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했고, 윤리적임과 동시에 그 시대를 대변하는 하나의 미적 가치였던 것이기에 사용자의 니즈를 반영할 수가 없었죠. (이와 관련한 내용은 다음에 다시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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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전의 서양 건축은 아름다움의 보편적 질서를 시각적 형식으로 표현하는 오브제이다-건국대 이상헌 교수]

근대로 넘어오면서부터 사람이 주인공인 건축, 사람을 우선 생각하는 건축이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근대건축의 3대 거장 중 한명인 르꼬르뷔제의 ‘근대건축의 5원칙’ 을 사용자 경험 디자인 측면에서 정리해 보겠습니다.

르꼬르뷔제에는 건축의 본질이 ‘인간’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건축설계를 할 때 언제나 거주자 중심의 건축 철학을 적극 반영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근대건축의 5원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 1원칙 – 필로티(Pilotis)
철근 콘크리트 기둥으로 건물 전체를 지탱하여 1층을 비워두는 구조가 바로 1원칙입니다.
르코르뷔지에 시대의 건축물은 대개가 기둥이 아닌 내력벽으로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던 방식이었습니다. 자연히 벽면의 두께가 두꺼울 수 밖에 없었고 채광의 불리함은 물론 공간의 협소함까지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1원칙 필로티로 해결할 수 있게 되었고 거주자들은 1층을 개방된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2원칙 – 옥상정원(Roof Garden)
1층을 필로티로 만들며 생긴 면적의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옥상을 정원으로 꾸며 휴식장소로 활용하고자 했습니다. 건물 옥상을 흙과 식물이 덮고 있음으로 인해 더위와 추위를 막아주는 효과와 건물의 조형미를 더할 수도 있습니다.

제 3원칙 – 자유로운 평면(Free Plan)
건물의 내부를 평면으로 구성하고 벽막이 칸을 활용하여 독립된 방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철근 콘크리트 기둥을 통해 건축물의 하중을 받치고 있기 때문에 벽막이 칸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거주공간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제 4원칙 – 자유로운 파사드(Free Facade)
파사드에서 뒤로 물러난 기둥들이 건물 하중을 받침으로써 기능면에서 자유로워진 파사드를 회화의 화면처럼 자유롭게 꾸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실용적인 측면 외 미적인 측면도 놓칠 수 없다는 의지의 표명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제 5원칙 – 연속적인 수평창(Ribon Windows)
수평으로 길게 연속창을 내어 수직 창보다 자연광을 더 많이 받아들이고 거주자가 파노라마적인 전경을 즐기자는 취지에서 제안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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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건축의 5원칙이 고스란히 반영된 「Villa Savoye」 – Le Corbusier]

르꼬르뷔제가 창안한 근대건축의 5원칙은 ‘인간’이라는 단어로 귀결됩니다.
건축을 ‘인간의 생활을 담는 기계’라고 정의하고 인간을 위한 건축을 지향했던 르꼬르뷔제로 인해 현재에 이르러서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 한다는 개념이 건축에도 널리 통용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현대건축의 사용자 경험 디자인

근대건축의 사용자 경험 디자인이 거주공간에 대한 배려, 기본적인 삶에 대한 배려를 주로 고려했다면, 현대건축에 이르러서는 보다 감성적인 측면, 삶의 질을 높이는 방안에서 배려가 연구되기 시작했는데요,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NHN 분당사옥

지하주차장의 1층~7층을 숫자가 아닌 환경으로 인지시켜 줍니다.
몇 층에 주차했는지 잊어버려 난감했던 경험이 한번씩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사람은 단순히 몇 층에 대한 기억보다 시각, 청각 등 다양한 경험으로 인지된 기억을 더 오래 간직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착안한 것이 각층의 엘리베이터 홀 벽면 마감재를 다르게 하고, 지하 2층은 새소리, 지하 6층은 종소리 등으로 구분하여 다른 소리를 인지하게 함으로 주차한 공간을 기억하도록 배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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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을 통해 기억하는 주차장]

1층에 위치한 도서관의 책장은 숲처럼 꾸며 놓았습니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용자들이 마치 숲 속을 산책하는 듯한 기분으로 책을 볼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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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의 감성을 배려한 도서관]

이 닦는 공간과 화장실의 분리도 주목할 만한 부분입니다.
이 닦으며 이상한 냄새를 맡고 싶은 사람은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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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과 양치실을 분리한 사소하지만 큰 배려]

그 외에도 사무실의 간접조명으로 인한 눈의 피로도 배려, 책상과 책상 사이의 공간 배려 등 많이 있지만, 부러우니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

원당 e편한세상

‘10cm의 마법’ 이라는 CF로 더 유명한 아파트 입니다.
실제 주부들을 대상으로 리서치를 진행하였고, 그들의 니즈가 적극 반영된 건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주차장 구획을 단 10cm 늘렸음에도 불구하고 운전이 서툰 주부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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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적 거주자인 주부를 대상으로 리서치 한 결과를 반영한 아파트]

1층 전체를 필로티로 조성하고, 아파트 출입구까지 계단이나 장애인 램프 등의 단차를 모두 없애 유모차, 휠체어 사용이 용이하도록 배려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뛰어 놀 때도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는 일을 줄이고자 노력해서 실제 아파트 주변에서 단차에 걸려 다치는 빈도가 줄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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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경험을 통한 니즈를 건축에 반영한 사례]

이렇듯 현대건축은 사용자가 원하는 구체화된 니즈(Explicit Needs) 뿐만 아니라, 그들조차 모르고 있던 잠재된 니즈(Latent Needs)까지 배려하는 단계로 진화하였습니다.
앞으로 건축적인 측면에서의 사용자 경험 디자인 연구가 더 활발히 이루어지고 적용됨으로 인해 인간의 삶이 얼마나 더 풍요로워 질지 내심 기대가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UXD = Architect!

UX 디자이너는 웹이라는 공간에서의 건축가라고 감히 결론을 맺어보려 합니다.
UX 디자이너와 건축가의 최종 결과물은 다르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과 디자인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용자의 삶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홍익유저’라는 공통된 과제 아래 어쩌면 두 직업의 사고방식은 같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UX 디자이너와 건축가의 사고방식은 서로 닮았습니다.
– 사용자 중심의 사고를 하고
– 미려한 디자인과 기능을 동시에 고민해야 하며
– 보이지 않는 서비스(공간)를 고려해야 합니다.

“사용자(거주자)의 숨겨진 니즈를 찾아내고 그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해 준다”라는 측면에서도 UX 디자이너와 건축가는 많이 닮았습니다.
궁극적으로 내가 만든 서비스(건물)가 사용자의 삶을 어떻게 이롭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질문으로 통하는 지점까지 말입니다.

Thinking Like an Architect will make You an Awesome Designer!
Why UX Designers Need to Think like Architects

 

오늘 퇴근 길 주변의 건축물이나 건물 내 공간을 살펴보는 여유를 가져보는 건 어떠신가요?
건축가는 이 건물, 이 공간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해 주고 싶었을까 하는 질문을 가지고 말이죠.

 

– 가치 UX 그룹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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