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키치적 형식을 대표하는 현대 미술의 수수께끼적 인물, 제프쿤스

10. 키치적 형식을 대표하는 현대 미술의 수수께끼적 인물, 제프쿤스

10. 키치적 형식을 대표하는 현대 미술의 수수께끼적 인물, 제프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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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란 저속한 작품, 혹은 싸게 만들다라는 뜻을 가진 독일어 동사 “Verkitschen”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미술 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1939년 <아방가르드와 키치>라는 논문에서 “키치는 간접 경험이며 모방된 감각이다”라고 말합니다. 
즉 키치는 한 시대에 나타나는 모든 가짜의 요약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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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멘트 그린버그는 또한 키치의 정의를 광범위하게 규정하여 재즈와 할리우드 영화, 광고 일러스트레이션도 키치의 일종으로 보았으나 현재 이러한 것들은 키치라기보다는 대중문화로 간주됩니다. 오히려 오늘날의 키치라는 용어는 조악한 감각으로 여겨지는 대상들을 야유하는 뜻으로 더욱 선호 되는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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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우스꽝스럽거나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혼용되어 나타날 때 키치라는 말을 씁니다. 현대화된 도시의 스카이라인에 불쑥 등장하는 예식장의 첨탑이나 돔 등이 시대착오적인 우리시대의 대표적 키치의 예입니다.
이처럼 외면으로 드러난 키치적 형태 뒤에는 언제나 키치적 삶의 태도가 그림자처럼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삶에서 단 하나뿐인 결혼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우리는 모두 특별하게 맞이하고 싶어합니다.
사랑하는 남녀가 평생의 언약을 맺게될 예식장의 외형이 동화에서나 그려질법한 비잔틴양식과 닮아 있다는 것은 단순한 양식적 패러디의 차원이 아닙니다.
그 옛날 멋진 성 안에서 결혼했던 왕자와 공주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가지고 오고 싶은 서사적 차용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읽었던 동화에서는 결혼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던 왕자와 공주만 존재하지 이별하고 슬퍼하는 사건은 벌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화전반에서 이러한 키치적 삶의 태도가 노골적으로 군데군데 드러나는 것은 사실, 동화적 삶에 대한 욕망이나 하위문화를 통한 일시적 일탈 등이 현실과 결합하여 조악한 형태를 드러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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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키치적 형식을 대표하는 미국 현대미술 작가로 제프쿤스(Jeff Koons)를 들 수 있습니다.
그는 현대 미술의 수수께끼적 인물이라는 평을 자주 듣습니다. 그의 불분명한 성격과 저속한 대상들(하위문화)에 대한 집착은 그가 반어법적인 비평가인지, 아니면 대중문화와 소비주의의 진정한 애호가인지에 대한 혼란을 야기 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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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쿤스는 뻔뻔스러운 자기 홍보와 대량 생산되는 상품들을 여러 종류의 미디어를 통해 예술의 지위로 격상시키는 일로서, 1980년대를 보냈습니다. 정지된 시간과 움직임의 환상을 만들어 내고자 물탱크 안에서 떠다니는 농구공들을 포함한 시리즈 “평형(1985)”에서 그는 미국 문화의 상징적인 요소들을 연이어 다루었습니다.
또한 그는 장난감이나 키치적인 대상들을, 스테인리스나 도자등 세속적인 재료들을 사용하여 대형 조각품으로 바꾸어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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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쿤스는 자신의 대표작 “강아지(1992)”란 작품으로 가장 큰 성공을 이룹니다.
이 조각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진 것으로 23톤에 달하는 엄청난 흙으로 덮은 후 피튜니아, 마리골드, 베고니아 등의 꽃 7만 개를 심은 작품입니다. 1990년대 중반 이후로 그는 팽창하는 세계를 기념하듯 대형 미술 작품들에 몰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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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이미지는 그의 대표작품중 하나인 핑크팬더입니다.
작품의 재료는 도자기이며 언론 플레이를 의식한 제프쿤스는 핑크팬더가 남성의 성적 메타포(마스터베이션)를 함의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그의 작업들 대부분이 성적 메타포를 함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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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쿤스의 모든 작업은 오롯이 그의 손에서 탄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의 “Balloon Dog”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쿤스는 그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실질적인 제작은 유럽 기술자나, 자신의 스튜디오에 있는 35명의 어시스턴트들에게 지시합니다.
이러한 작업 방식을 두고 저는 몇 가지 고민에 봉착합니다. 예술가 본인이 작품을 만들지 않으면 그게 예술일까?
이러한 예술적 방법론은 사실 아직 까지 내려오는 현대미술의 주된 논쟁거리이기도 합니다.
제프쿤스의 작업방식을 긍정하는 부류들이 논리적 근거로 삼는 것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디자인의 어원인 디세뇨(Disegno)입니다.
디세뇨는 본디 머리에 떠오르는 창조적 생각을 이미지로 옮겨 그리는 <계획>을 뜻합니다.
특히 과거의 공방체제에서 예술가들은 왕이 내려주는 임무를 시간안에 시행하기 위해서 작업 지시서(디세뇨)를 꼼꼼하게 도제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이 필수였습니다. (그 많은 작업을 예술가 혼자 도맡아 할 수는 없었고 시간안에 완성하지 못할시 사형내지 중벌에 처했다고 합니다.)

제프쿤스등의 현대미술가들이 디세뇨라는 작업 매뉴얼을 현대미술에 차용하는 것을 옹호하는 비평가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술가의 순수 관념적인 상태, 즉 머릿속에 담긴 예술의 상태는 무균질 상태로서 순수한 예술적 원형인데 반해, 그것이 머릿속에서 나와 예술가의 몸적언어로 표현될 때 자기 생각과는 다르게 방향성이 틀어진다는 것입니다.(오염된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사적 감정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타인의 손을 거쳐 나의 생각을 완성하는 것이 순수한 예술적 원형을 보존하는 예술적 방법론이라고 주장합니다.
사실 이러한 예술적 방법론에는 실로 다양한 주장이 있기에 혹여나 이런쪽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자료를 찾아보시고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비평가의 관점에서 예술작품을 바라보시면 될 듯합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데미안 허스트도 위와 같은 예술적 방법론을 차용한다고 합니다. 이와 정반대되는 예술적 방법론을 펼치는 작가 중에는 잭슨폴록이 대표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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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이미지는 제프쿤스의 Sacred Heart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초콜릿 선물이라는 의미 외에도 종교적인 상징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제목 Sacred Heart는 “성심”이라는 의미이며 가톨릭교에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속죄를 뜻합니다.
초콜릿이라는 일상적 소비의 상징을 거대화 시킴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시각적 유희 또한 전달합니다.
Sacred Heart는 우리나라 신세계 백화점에서 시가 300억 원에 구입해 아트 마케팅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신세계 본점 본관 옥상의 트리니티 가든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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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유독 헐크와 같은 하위문화의 상징들을 가지고 작업하기 좋아하는 이유는 사실 현실적인 계획들과 판매루트까지 고도로 계산된 하나의 멋들어진 아트마케팅적 요소를 동반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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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롬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진 다이아몬드 앞에 서면 그 번쩍이는 외관에 비치는 통속적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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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튤립(Tulips)과 풍선 꽃(Balloon Flower)작품에서 그러한 진가는 더 확실히 드러납니다.
크롬 스테인리스 스틸의 재질적 특성이 가진 “반짝거림”과 “비침”이라는 두 가지 속성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은 자신을 비춰보는 나르시시즘적 성격에 가깝습니다.
이는 곧 보는 이로 하여금 물질문명에 대한 자기 비판이라는 통속성의 연장 선상에 놓이게 합니다.
이러한 통속성은 사실 대중매체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가령 출생의 비밀은 한 때 유행하던 소재였으며 현재는 진부한 “클리셰(cli·ché)”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클리셰란 판에 박은 듯한 문구 또는 진부한 표현 등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고전소설의 출생의 비밀은 그저 천상의 존재가 기이한 태몽을 거쳐 탄생했고, 영웅적인 면모가 전쟁 등의 특수한 발화 계기가 없으면 숨겨져 있다는 정도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현대극에 와서의 출생의 비밀이란, 지금의 부모가 친부모가 아니라든지, 현재의 형제가 친형제가 아니라든지 하는 내용입니다.
남매간의 사랑 이야기도 있습니다. 반대로 사랑하는 남녀 주인공이 사실은 배다른 이복남매라는 사실이 밝혀져서 파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수 많은 통속적 클리셰(가령 예전 에로 영화에서 즐겨 사용된 베드신과 교차 편집되는 폭포수와 같은 남성적 상징들)들은 아무것도 없는 무의의 상태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서사들끼리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혼성모방품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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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을 다시 한번 다른 서사적 구조를 이용해 환기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슬픈 영화를 보러 가서 시작된지 몇 분이 안돼 주인공에게 벌어지는 몇 가지 죽음에 관한 암시를 보고서도 두 시간이 넘게 그 자리를 지키는 모습에서 그런 부분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슬픈 영화를 보러 가는 이유는 우리의 슬픔에 대한 부분을 미묘하게 건드리는 슬픔에 관한 클리셰의 환기차원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코드를 이용할 수 밖에 없는 클리셰들은 제프 쿤스를 비롯한 수많은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에서 자주 발견됩니다.
이는 손쉽게 대중들과의 담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마법의 묘약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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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별처럼 멀지만 제프쿤스와 가수 싸이 사이에는 하위문화를 이용해 주류 문화에 안전하게 봉착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에는 키치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오히려 고급이라고 일컬어지는 “강남문화”에 대한 조롱을 포함하고 있다는 데에서 일종의 냉소가 느껴집니다.
즉 물질 만능시대를 풍자하는 노랫 가사들을 통해 싸이는 역설적으로 허세로 뭉쳐진 부유층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강남스타일의 음율이나 비트뿐 아니라 노래의 내용을 알고 열광하는지에 알 수 없지만 <강남스타일>이라는 제목에 대한 의미가 여러차례 보도된 것을 보아 어느 정도 실마리를 잡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강남스타일이 콘돔스타일로 오역되 세계 곳곳에서 널리 불리고 있는 현상은 달콤한 외형에 쌓여 속을 분간할 수 없는 키치적 특성과 닮아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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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쿤스 역시 지금의 풍선 시리즈 작품을 제작하기 전에 위와 같은 삼류 포르노 영화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사진들과 조각작품들을 주로 했습니다.
90년대 초반 미국의 사회적 분위기가 성적인 것을 용인하는 말초적 자극의 시대였던 것을 고려하더라도 그가 스스로 모델이 되고 결혼까지 한 포르노스타와의 애정행각을 그대로 노출시킨 작품은비난을 피해 가기 어려웠습니다.
어느 정도 베일에 가려 신비한 분위기를 포함할 때 (예술적 아우라) 그제야 예술적 가치를 인정했던 분위기 속에서 제프쿤스 작품의 노골성은 비난의 대상이 됐었던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싸이가 조각 같은 몸매의 소유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웃통을 벗고 공개적으로 춤을 추며 뱃살을 출렁이는 무대와 제프쿤스의 포르노틱한 작품사이에서의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말초적인 시각적 자극을 주기 위한 섹슈얼리티의 전달 도구로써 자신의 오브제화 시킨 몸을 이용한 것은 아닐까 합니다. (비록 싸이에게는 초창기 애용했던 엽기코드의 잔해가 발견되기는 합니다.)
우리가 제프쿤스나 싸이의 작업에서 귀엽고 쉽고 번쩍이는 것들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욕구라고 느껴집니다.
키치의 정치학이라고 다시 고쳐 말할 수 있는 이 부분은 포스트 모던적 세계관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전 세계 사람들은 앞서 말한듯이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콘돔스타일로의 의도적 오역을 통해 자신들만의 맥락으로 고쳐 즐깁니다.
또한, 여러가지 하위 문화적(클리셰) 요소가 다분한 싸이의 뮤직비디오에 자신들 혹은 특정한 집단의 정체성을 투영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재 구성된 수많은 유투브 관련 동영상들이 순수 창작물들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보다 더 많은 관심과 실시간 검색어를 점령했던 것은 간과할 수 없는 문화적 딜레마 입니다.

또한, 제프 쿤스의 번쩍이는 작품에서 우리는 그 커다랗고 달콤한 알루미늄들이 의미하는 바를 인식하기도 전에 육체적으로 먼저 거부감 없이 받아들입니다.
진정한 키치는 그러한 무관심함에 대해 문화적 항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질 소비시대의 거품처럼, 혹은 풍선처럼 커져 버린 사람들의 욕망에 대해, 그러나 아직은 그 안에서 논의해 볼 수 있는 사항들에 대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어디인가를 말하는 작가의 일침을 되새겨 보아야 할 때입니다.

 

– 가치디자인그룹 SY Kim[catlist name=”Design History” numberposts=5 excerpt=”yes” pagination=”yes” excerpt_size=”0″ title_only=”y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