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davidcarsondesign.com/

01. 포스트모던 디자이너의 대명사, 데이빗 카슨

디자이너는 왜 디자인사를 공부해야 할까요?

참 무식한 질문이지만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옛 선조의 찬란한 역사적 맥락을 이어받아 새로운 것을 얹는다” 같은 류의 도덕적 대답말고
다른 쿨한 대안은 없을까요?

각종 디자인 분야에 종사중인 친구들과 있다 보면 디자인의 이론적인 부분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대화의 마무리는 항상 “우리가 실제로 행하는 디자인과는 별로 상관없지 않나?” 라며 끝나고 맙니다.
실제로 우리가 작업하는 환경에서 바우하우스니, 모더니즘이니, 형식주의니, 아르누보니 하는 사조들을 이용해 디자이너가 난관에서 탈출하는 일은 그리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며, 이러한 사실들은 곧 이론과 실무의 거리감으로 다가옵니다.

저는 이러한 답답함을 근거삼아 도무지 좁혀지지 않는 거리에 있는두 별을 잇기 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이 프로젝트를 계기로 우리가 행하는 실제의 디자인과 그간 배워온 이론과의 심리적 격차를 조금이라도 좁혀보고 더 나아가서는 다양한 이론을 밑바탕 삼아 저를 비롯한 모두가 개별성을 가진 주체적 디자이너로 거듭나기를 소망합니다.

시작하기에 앞서 모든 디자인사를 광범위하게 정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이라고 생각하며 해낼 능력도 사실 부족합니다.
그렇기에 우리와 밀접하거나 가까운 디자인사부터 거꾸로 답습해 나가는 형식을 취하도록 하겠으며, 이야기의 서술방식은 역사적 사실들을 선형적으로 읽어 내려가기 보다는 중요한 사건들을 토대로 주위 전체를 바라보는 전복적 방식을 채택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진행 방식은 이렇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이번주에 커다란 하나의 사조속 사건을 토대로 이야기를 한 후에 다음주에는 반대되는 속성을 가진 사조로 이동하고 그 다음주에는 또 다시 그 속성의 반대를 가진 사조로 이동하는 형식입니다.

이런 식의 변증법적 진행방식을 차용하고자 하는 이유는 위에서 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사조들의 위계적 관계에서 탈피해 보고 싶었던 것이 첫번째 이유이고, 두번째 이유는 관련 없어 보이는 사조와 사조간의 숨어 있는 대각선들을 발굴해 현실의 디자인을 반추해 볼 수 있는 거울로 쓰기 위해서 입니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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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http://www.davidcarsondesign.com>

첫 번째 디자인 사상사에 대한 주제를 무엇으로 잡아볼까 고민하다 결정 내린것은 바로 포스트모던한 디자이너의 대명사인 <데이빗 카슨>입니다. 일반인들도 한 번쯤은 데이빗 카슨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것입니다. 아래는 데이빗 카슨의 공식사이트 URL입니다. 최신작이 많이 올라와 있으니 한 번쯤 들러서 구경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www.davidcarsondesig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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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http://www.davidcarsondesign.com>

위의 그래픽을 보면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지 않나요?
저는 해체, 파괴, 무질서, 혼돈 등이 떠오릅니다. 어쨌든 좀 기괴합니다.
저희가 미덕으로 삼는 가독성은 코빼기도 안 보이는군요.
사실 지금은 위와 같은 디자인기법이 그렇게 급진적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하지만 데이빗 카슨이 저런 기법을 선보였을 당시 미국의 시대상은 Helvetica 서체를 중심으로 한 모던한 디자인이 디자인계의 주류로 등극해 있을 때였습니다. 그러한 모던한 디자인이 활개를 치는 문화에서 데이빗 카슨의 등장은 큰 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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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http://www.davidcarsondesign.com>

그 이후로 1990년대 초반 어떤 디자이너보다도 능동적이고 효과적인 대중적 접근을 선보인 데이빗 카슨은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이어진 <레이건>지의 아트 디렉터 활동이나 전 세계에 걸친 강연과 워크숍들에서 많은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실험적 디자인을 소개하는 역할을 해냈습니다.

<레이건>또한 이러한 유형의 디자인을 디자이너가 아닌, 특히 미국 밖의 사람들에게 경험케 하는 기회를 제공했고, 많은 매스컴들이 데이빗 카슨의 시도를 이러한 사례의 선구격인 양 보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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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http://www.davidcarsondesign.com>

확실히 X세대 젊은 문화의 기표로서 잡지 <레이건>의 디자인이 이룬 성공은 기업 광고들이 해체적 형식을 급속히 받아들이도록 강제했고 이에 따라 카슨은 펩시콜라, 나이키,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광고를 연이어 제작하게 됩니다.
현재 주위를 살펴보면 데이빗 카슨의 디자인 모토를 가장 잘 차용한 기업은 컨버스사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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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http://www.davidcarsondesign.com>

데이빗 카슨은 자신의 첫 번째 저서 <인쇄의 종말>에서 자신의 작업 방식을 “규칙에 얽매이지 않으며 직관적이되 정규적인 훈련 방식을 전혀 거치지 않은” 것으로 기술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학교 교육을 부정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디자인에 흥미를 느꼈을 때 나는 정녕 그러한 규칙들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대상과 그 주제가 지닌 모습과 느낌을 표현하는 데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디자인 정규교육에서 받아온 타이포그래피의 순기능에서 ”가독성”은 당연히 지켜야 할 덕목으로 치부 됩니다.
하지만 데이빗 카슨이 아트디렉터로 있던 잡지<레이건>의 아트워크들을 살펴보면 가독성은 둘째치고 해석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습니다.
모든 텍스트를 딩벳폰트로 처리한 지면도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데이빗 카슨의 작업에서 타이포그래피를 읽는 것이 아닌 느끼는 것으로 여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독성이 좋다는 것은 잘 읽혀야 하는 것이 맞지만, 의미를 잘 전달 한다는 측면에서 바라 봤을때는 오히려 표현적 타이포그래피가 더 뛰어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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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http://www.davidcarsondesign.com>

데이빗 카슨은 그리드 시스템의 합리성 및 여타의 타이포 그래피 체제가 빠르게 급변하는 시대상을 감싸기에 역부족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의 작업에서는 펑크스럽고 해체적인 분위기를 통해 기존의 관례들을 깨보려는 충동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그 후 1997년 영국의 한 일간지는 헤드라인 기사에서 데이빗 카슨을 <해체의 영웅>으로 호명하기도 했습니다.

제 생각에 완성된 디자인에서 그 디자인을 행했던 디자이너의 스타일이 브랜드 이미지 보다 돋보이는 것은 클라이언트의 입장에서 썩 유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클라이언트가 전달하려는 이미지와 디자이너의 사적 스타일이 조응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대체로 브랜드에서 자사의 브랜드 포지셔닝을 옮기고 싶을 때 그 브랜드의 가치와 걸맞는 아트워크를 해줄 수 있는 아티스트의 성향을 클라이언트가 역으로 찾아가는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이와 같은 사회 구조 속 디자인이 처한 현실에 대해 데이빗 카슨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 소신은 제가 작업하는 일에 저를 집어넣는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저는 일에 대해서 중립적이기가 불가능합니다. 중립적이란 것은 다른 쪽에서 보면 상투적인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즐기고 있는가. 바로 나를 투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디자이너는 이를 통해 디자인에 부가가치를 불어넣습니다. 저는 결국 저의 독자성으로 차별화된 디자인을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데이빗 카슨의 태도는 작업물에서 고스란히 들어납니다.
텍스트 위를 내달리고 있는 각진 파쇄선, 각 단락의 마지막 줄 간격을 맞추기 위해 임의로 동원된 정렬, 데이빗 카슨의 작업에서 서체의 요소는 앞서 말했듯 읽기 위함이 아닌 회화적이고 감성적인 방식으로 취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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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http://www.davidcarsondesign.com>

데이빗 카슨의 여러 가지 해체적 작업들은 이내 쿨함을 대변하는 기표로서 젊은 디자이너들의 유사작업들을 양산해냈고 이내 그런지라는 새로운 그래픽 스타일의 도래를 알리고 있었습니다.
그런지는 펑크처럼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지만, 힘이 넘쳐났고 반권위적이었으며 성나 있었으며 하위문화 지향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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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http://www.today.com>

영국의 아트 디렉터 조슈아 베르거는 데이빗 카슨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산업사회가 태동시킨 문화적 허무주의는 모더니티의 말끔한 그리드를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간혹 모더니스트들은 데이빗 카슨의 작업을 보고 쓰레기라고 폄하하곤 하며 현시점의 디자이너들이 실무적으로 차용하기에도 까다로워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빗 카슨은 항상 이 시대 최고의 디자이너로 추앙 받곤 합니다.
그것은 그의 디자인 스타일 너머에 있는 체제에 굴복하지 않고 젊음과 끝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장 시키려는 노마드적 사고방식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 가치디자인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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