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포그래피의 탄생] – 3. 계몽시대

[타이포그래피의 탄생] – 3. 계몽시대

[타이포그래피의 탄생] – 3. 계몽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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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포그래피 스터디]  타이포그래피의 역사 3편
타이포그래피 스터디 시리즈로 연재되는 본 글은  『타이포그래피의 탄생』책 내용을 토대로 핵심 내용을 정리, 요약하였습니다. 글쓴이의 덧붙임 문장 앞에는 *을 별도 표기하였습니다.

<타이포그래피의 탄생> 로빈 도드 Robin Dodde 지음

 

계몽시대

17, 18세기 전반에 걸쳐 읽을거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탐구의 시대가 열렸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고 평등한 권리와 교육을 지향하였다. 교육 받은 사람들의 자신감이 더욱 강해지면서 왕권과 교회의 권위는 이전처럼 존경 받지 못했다.

01볼테르 의 뉴턴 소개서 속표지. 뉴턴주의 지식을 몽매(어둠)을 깨우치는 빛(계몽)으로 비유했다. / 출처: 위키백과

 

계몽시대 배경 (17~18세기)

– 자연과학의 발달 (17세기 후반, 뉴턴이 현대 과학의 기반을 다짐)
– 정치적, 종교적 권위에 대한 반발, 비판 정신
– 인간의 권리, 민중에 대한 계몽 운동
– 대표 철학자들: 임마누엘 칸트(독일) – 계몽주의 / 존 로크(영국) – 경험주의 / 데카르트, 루소(프랑스) – 합리주의
– 혁명적인 발전 (증기기관 발명, 농사의 능률적 증진, 다축 방적기 발명 등)
– 1774년 필라델피아 첫 번째 대륙회의, 미국 독립전쟁 시작

 

1. 윌리엄 캐슬론과 영국 올드페이스
: 영국 타이포 그래피의 아버지

캐슬론의 활자는 산업혁명의 격변기에 제조되었다. 영국에서 발생한 움직임은 방법과 사고, 기계류의 급속한 발달로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극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16~17세기 영국은 인쇄 검열로 금속 활자를 네덜란드 수입품에 의존했다. 이런 제약을 고려하면 윌리엄 캐슬론이 그의 첫 번째 영국 올드페이스 활자를 만드는 데 네덜란드 올드페이스를 모델로 삼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캐슬론은 영국의 가장 위대한 활자제조가이자 주조가로 인정받았다. 그가 설립한 활자주조소는 영국 인쇄에서 큰 획을 그었으며 그가 거의 혼자 힘으로 만든 활자는 무척 뛰어났기 때문에 점점 네덜란드 활자를 수입할 필요가 없어지게 되었다.

02윌리엄 캐슬론 (1693-1766)

 

1-2. 숙련된 장인
: 숙련된 활자주조가 캐슬론의 명성

윌리엄 캐슬론은 원래 총기 등을 장식하는 금속 세공업자였다. 훌륭한 작업물과 화려한 기술 덕에 인쇄업자 존 와트와 윌리엄 보이어의 눈에 띄어 활자주조를 위한 후원을 받게 되었다. 1720년 영국 런던에 활자 주조소를 설립하고, 네덜란드 로만 서체를 모델로 캐슬론 서체를 만들었다. 캐슬론은 보이어의 후원으로 콥트 문자(Coptic)와 이국적인 글꼴을 포함한 여러 글꼴들을 제조했다. 엄청난 작업량 때문에 활자주조소 사업을 시작한 후 14년이 지난 1734년에야 비로소 활자 견본서를 만들 수 있었다. 캐슬론의 명성은 해외로 퍼져나갔지만, 그의 영어 활자는 역사적으로 마지막 올드페이스였다. 유럽에서는 세기가 변하면서 미적 기준이 바뀌어가고 있었으며, 17세기 중반에는 영국 버밍엄에서 존 바스커빌이 새로운 형식을 실험하고 있었다.

 

03캐슬론 주조소 견본서

 

2. 캐슬론, 마지막 올드페이스
: 네덜란드 활자체 영향을 받은 독특하고 실용적인 로만체

1720년대 캐슬론의 첫 로만체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캐슬론체는 가독성이 매우 좋고, 독특하고 친근하며 개성 있다. 글꼴의 단단한 형상, 자유로운 곡선, 기품 있는 베이스라인의 세리프에서 알 수 있듯이 네덜란드 활자체가 널리 쓰일 수 있었던 실용적인 특성을 담고 있다. 굵은 선과 가는 선의 독특한 대조가 각각의 활자로 보았을 때는 고르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문장으로 놓고 보면 묘하게 잘 어울린다. 캐슬론체는 18세기에 정착하기 시작해서 식민지 제도를 위한 도구의 일부로 영어권 세계로 퍼져나갔다. 1776년 인쇄된 미국 독립선언문은 미국으로 수출된 캐슬론체로 조판되었다.

04캐슬론의 형태적 특징

05캐슬론으로 인쇄된 미국 독립선언문

 

3. 왕의 로만체, 트랜지셔널의 시작
: 동판 새김 기술에 영향을 받은 새로운 로만체의 등장

윌리엄 캐슬론의 글꼴이 영국에서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그 글꼴은 16세기 글꼴에 기반한 것이었다. 캐슬론 활자주조소의 확장과 거의 동시에 프랑스의 활자 디자인에서는 새로운 시대로 이행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이것이 트랜지셔널체의 발단이었다. 1692년,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프랑스 왕립 인쇄소에서 독점적으로 사용할 새로운 글꼴을 제작할 것을 명했다. 프랑스 과학원은 이 프로젝트를 위해 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시대는 새로운 과학의 시대를 여는 초창기였고, 위원회는 이전 세대 활자와 글자꼴에 대해 깊이 연구했다. 그 결과, 위원회는 작은 정사각형 2,304개로 이루어진 그리드를 사용해 각 활자의 비례를 결정하게 되었다. 이 글꼴의 형태는 손기술이 아니라 수학으로 결정되었기 때문에 캘리그래피 같은 흘림이나 펜의 움직임이 느껴지는 형태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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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4세와 왕의 로만체 / 출처: https://www.smashingmagazine.com

 

왕의 로만체는 21가지 크기의 로만체와 이탤릭체 21가지 크기, 로만체와 이탤릭체 머리글자 21가지 크기를 합해 총 84개의 폰트로 이루어져 있었다. 세리프의 까치발은 올드페이스 글꼴보다 덜 두드러진다. 세로축의 머리 부분에서 양쪽 모두 세리프가 디자인되어 어센더의 수평적인 강세가 더해졌다. 가라몬드체나 가라몬드 타입 글꼴들에 비해 선의 굵기 대비가 더 크고, 전반적인 생김새에서 올드페이스보다 두께가 더 날렵해졌다. 제조된 금속판을 보면 처음 의도한 디자인은 최종 완성본의 흘림 글씨인 이탤릭체가 아니라 비스듬한 로만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현상은 캘리그래피보다 동판 새김 기술에 더 큰 영향을 받아 디자인된 것으로 보인다.

 

07수학적 비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트랜지셔널체, ‘왕의 로만’. 새김동판에서 각 글자의 모양이 어떻게 그리드와 연관되어 있는지 볼 수 있다.

 

4. 피에르 시몽 푸르니에와 포인트 체계
: 왕의 로만체를 사랑한 프랑스 활자주조가

새로 발명된 왕의 로만체의 수많은 찬미자 중 활자주조가 피에르 시몽 푸르니에가 있었다. 당시 동시대의 캐슬론과 매우 가까운 사이였던 푸르니에는 활자주조가와 인쇄업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형과 함께 활자주조소에서 일하며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대문자 펀치를 깎을 수 있게 되었다. 1736년, 푸르니에는 자신의 사업을 계획했고 활자주조가이자 활자조각가로 재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활자 디자인은 그리 혁신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이들의 아이디어를 차용해 발전시키는 데 머물러 있었다.

 

08피에르 시몽 푸르니에(1712-1768)

 

4-1. 측정 체계
: 활자 주조를 위한 실용적인 포인트 체계를 정립한 푸르니에

1737년 푸르니에는 프랑스 과학원 기획 하에 활자의 크기를 비교하는 체계를 정립하기 시작했다. 초기 활자주조가들이 만들었던 활자의 크기는 표준화된 것이 아니어서 제작자들은 그들 나름의 기준으로 활자를 주조했다. 크기에 따라 이름을 붙였고, 몇몇 종류는 그 크기의 활자를 처음 사용한 출판물에서 파생된 이름을 붙였다. 푸르니에의 측량시스템이 다른 활자주조소에서 사용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엄청난 실용성을 가져왔다. 그가 타이포그래피의 기술적 완벽함을 위해 바친 세월의 최정점이자 최대의 업적은 2권으로 이루어진 <타이포그래피 매뉴얼 Manuale Typographique>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활자주조의 이론과 실제에 대한 비밀을 밝힌 푸르니에의 2권짜리 책은 당시 볼 수 있는 가장 권위 있는 출판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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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니에는 오랜 시간을 들여 상호관계적인 활자 크기 체계를 고안한다. 그는 이 체계를 자신의 활자주조소에서 시험적으로 적용해본다. 표는 그의 아이디어를 잘 설명해준다.

 

5. 바스커빌, 그리고 예술적 형태가 된 타이포그래피
: 완벽주의가 이끈 인쇄기술의 발전과 트랜지셔널 스타일 글꼴

1706년 영국의 우스터셔에서 태어난 존 바스커빌은 19세 때 버밍엄으로 옮겨가 문필가이자 활자조각가로 교육받았다. 그의 첫 작품은 1757년에 발행된 베르길리우스의 고전 작품집이었다. 완벽을 추구한 바스커빌은 정확도를 높이고 좀 더 미세한 인상을 주기 위한 인쇄 방법들을 탐구했다. 또한 잉크의 질을 향상하는 방법도 고안했다. 그는 스스로 고안한 종이를 만들었고 종이를 더 부드럽게 하는 기술을 발전시켰으며, 가열된 동판 사이로 인쇄된 종이를 통과시켜 글자에 광택을 더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세심함으로 바스커빌은 무척 기품 있는 책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10캐슬론과 바스커빌의 구분되는 글꼴 특성 / 출처: Trello

11캐슬론과 바스커빌의 차이는 알파벳 ‘Q’에서 그 특징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6. 디도 가문과 모던페이스
: 18세기 말, 프랑스 인쇄업계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운 디도 가문

프랑수와 디도의 아들인 프랑수와 앙브루아즈는 고도로 숙련된 기술을 지닌 인쇄업자이자 활자주조가였다. 그는 바스커빌이 선호했던 표면이 매끄러운 종이를 프랑스에 들여왔다. 1783년에 루이 16세는 프랑스 고전 작가들의 작품 모음집을 내는 일에 앙브루아즈를 임명하기도 했다. 그는 푸르니에가 발전시켰던 디도 포인트 시스템을 완성했다. 프랑수와 앙브루아즈는 1프랑스인치가 72포인트가 되도록 포인트 체계를 표준화하였고, 17세기가 끝나기 전에 왕실의 승인을 받은 디도의 표준화 체계는 프랑스의 기준이 되었다.

 

12디도의 가문은 프랑스의 인쇄업과 서적상 가문으로도 유명하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예전에 만들어진 서체이기 때문에 디지털화하면서 다양한 영문회사에서 작업한 덕에 여러 버전의 ‘디도’가 있다. 위 사진은 1960년대 CBS 방송사에 쓰인 ‘디도’ 서체이다. 지금은 사용하고 있지 않다.

 

6-1. 디도 가문의 가업
: 신고전주의 시대 프랑스의 우아함을 활자로 보여준 피르맹 디도

프랑수와 앙브루아즈에게는 피에르와 피르맹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 다 가업을 이어받았다. 피에르는 인쇄 사무실의 운영을 맡고, 피르맹은 뛰어난 활자주조가가 된다. 피에르 디도의 아들 앙리는 매우 작은 서체를 만들어 널리 알려졌고, 그의 형제 셍레제는 종이 제작가로 훗날 영국에서 완성된 종이 제작기의 제작 초기에 힘을 보탰다. 1784년, 피르맹 디도는 최초의 모던페이스 활자로 인정받는 글자꼴로 펀치를 깎았다. 얇은 획과 세리프를 가는 선으로 만들고 두꺼운 획의 대비를 더한 디자인이었다. 크게 이름을 떨친 피르맹 디도는 다른 이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특히 모던 활자 디자인의 천재로 불리는 이탈리아 인쇄업자 잠바티스타 보도니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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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오귀스테 도미니크 잉그레스 < 호메로스의 찬양>, 1827. 신고전주의(neo-classicism) 는 18세기 말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발전한 미술 사조다. 고대 그리스와 고대 로마 문화의 고전적 예술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18세기 계몽주의와 비슷한 시기에 일어나 19세기 초까지 이어졌으며, 후에 낭만주의와 대립한다.

 

7. 잠바티스타 보도니와 모던 글꼴
: 기하학적으로 설계된 고전적인 모던 글자꼴

이탈리아인 잠바티스타 보도니는 인쇄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자연스럽게 인쇄를 접하고 나무 조각을 깎으면서 실력을 쌓았다. 동양 언어에 관심을 보였던 그는 가라몽과 그랑장 이후 2세기 동안 명맥이 끊겼던 동양 활자체를 담당했다. 이것은 보도니에게 글자꼴에 대한 관심을 넓힐 수 있는 경험이 되었다. 18세기 말 무렵 모던페이스는 가독성이 떨어지는 조악한 활자라는 혹평을 받고 외면받기 시작한다. 하지만 18세기 말 모던 글자꼴은 르네상스 시대의 캘리그래피에서 파생된 활자들과 달리 신고전주의 시대에 맞게 정제된 미학과 기술로 창조되었다.

 

14보도니체는 기하학적으로 설계된 글자로 세리프가 수평으로 직선을 이루고 있다. 굵은 획과 가는 획이 조화롭게 이루어진 고전적이지만 모던한 서체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모리스 벤튼에 의해 새롭게 재현되어 지금까지도 아름답고 세련된 제목용 서체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7-1. 장인에서 예술가로
: 학자적인 경향을 가진 뛰어난 인쇄공

존 바스커빌의 명성과 인쇄기술의 업적들은 이탈리아에도 전해졌다. 보도니가 처음으로 인쇄하기 위해 사용했던 글꼴은 피에르 시몽 푸르니에의 트랜지셔널 활자들이었다. 보도니는 매사에 의욕적이고 무엇이든 빨리 배웠다. 그의 관심사는 장서 제작에 대한 완벽한 구상이었다. 가는 세리프 활자의 펀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놀라운 기술이 필요하다. 보도니는 그 모든 과정을 매우 섬세히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보도니는 만족할 때까지 깎기와 점검을 반복해가며 수개월을 소요하기도 했다. 보도니가 인쇄한 책에는 <호라티우스>와 <베르길리우스>, <카툴루스>, <일리아드>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고전 문학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1810년에 그는 나폴레옹에게 송아지 피지에 인쇄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선물하기도 했다.

 

7-2. 예술적 작업
: 기능보다는 예술적 형태를 따른 보도니체

보도니는 독자들이 그의 책을 보고 환상적인 시각적 경험을 하길 바랐다. 그래서 그는 펀치 조각과 인쇄술에서 뛰어난 결과물들을 창조해냈고, 까다로운 고객들은 보도니의 책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보도니가 만든 책들은 읽기가 조금 힘들었지만, 타이포그래피적으로 최고의 예술미를 갖추고 있어 수집가들에게 최고의 예술작품으로 추앙되었다. 보도니는 그의 저서 <타이포그래피 매뉴얼>의 두 번째 판본을 찍기 직전인 1813년에 세상을 떠났다. 1818년에 그의 아내가 발행한 그 책에는 평소 그가 손수 디자인하고 일일이 깎고 아껴왔던 200여 종에 이르는 다양한 크기의 모던 타입 페이스 견본이 모두 담겨 있다.

 

15보도니의 <타이포그래피 매뉴얼>

 

 

<요약>

영국 마지막 올드페이스, 윌리엄 캐슬론 (1693-1766), 캐슬론체 (1725)
– 네덜란드 로만 서체를 모델로 한 실용적 서체
– 시각적 안정감과 높은 가독성으로 본문용 서체로 널리 쓰임
– 1776년 미국 독립 선언문에 사용

트랜지셔널 스타일 등장, ‘왕의 로만’ (1692)
– 트랜지셔널: 올드페이스와 모던시대 사이 과도기 서체
– 동판 새김 기술 영향과 수학적 비례 바탕
– 프랑스 왕실의 독점적 사용을 위한 새로운 글꼴

프랑스의 활자 측정 체계 (1737)
– 프랑스 과학원 기획 하, 피에르 시몽 푸르니에가 발전시킨 실용적인 포인트 체계
– 후에 디도 가문이 디도 포인트 시스템을 완성하여 프랑스의 기준이 됨

존 바스커빌 (1706-1775), 트랜지셔널 바스커빌체 (1754)
– 올드스타일에 비해 획의 굵기 대비가 크고 세리프가 예리함
– 보기 좋은 대칭성과 섬세하게 정돈된 기품에서 미국 신고전주의와 특성을 공유함
– 벤자민 프랭클린이 사랑한 서체

디도 가문 (18세기 말), 모던페이스 디도체 (1784)
– 최초의 모던페이스 활자로 인정받는 글자꼴을 만든 피르맹 디도
– 신고전주의 시대 프랑스의 우아함이 느껴지는 서체

잠바티스타 보도니(1740-1813), 모던 글꼴 보도니체(1790)
– 모던 스타일과 디돈(디도+보도니) 양식의 대표 이탈리아 서체
– 기하학적 형태에 기반한 수학적 비례미가 돋보임
– 기능보다 아름다운 형태를 따른 제목용 서체 (패션 잡지의 제목 서체로도 유명)

 

 

 

– 가치 디자인그룹 박다운

 
[관련글]
[타이포그래피의 탄생] – 1. 인쇄 이전
[타이포그래피의 탄생] – 2. 르네상스
[타이포그래피의 탄생] – 3. 계몽시대
[타이포그래피의 탄생] – 4. 기계시대
[타이포그래피의 탄생] – 5. 초기 모더니즘
[타이포그래피의 탄생] – 6.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타이포그래피의 탄생] – 7. 포스트모던 시대
[타이포그래피의 탄생] – 8. 디지털 활자디자인 회사
 

[참고 서적]
로빈 도드, 『타이포그래피의 탄생』, 홍시&홍디자인(2010), p16~25.
[참고 자료]
(타이틀 이미지) 위키백과, 자크 루이 다비드 <테니스 코트의 서약>, https://ko.wikipedia.org/wiki/테니스_코트의_서약
윌리엄 캐슬론,
http://www.historygraphicdesign.com/a-graphic-renaissance/an-epoch-of-typographic-genius/66-william-caslon
Kallistipublishing, “미국 독립선언문” 이미지,
http://www.kallistipublishing.com/the-declaration-of-independence-kallisti-publishing/
The paper, “왕의 로만체 서체 모듈” 이미지,
https://blog.thepapermillstore.com/blogdev/history-of-typopgraphy-baroque/kings-roman/
Designing with type, “푸르니에의 포인트 체계”, https://www.designingwithtype.com/5/ref_typsetting.php?whatImage=3
위키백과, “신고전주의”, https://ko.wikipedia.org/wiki/신고전주의
타이포그래피 서울, “패션잡지 <보그>에서 볼 수 있는 영문폰트, ‘디도’와 보도니’의 차이”,
http://www.typographyseoul.com/news/detail/647
K-paper, “BODONI”, https://k-paper.com/ko/bodoni/?v=38dd815e66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