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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디자이너입니까? (feat. 우아한형제들)

지난 3월 13일 라이트브레인 사내 채움회실에서 열린  Seed Class는 우아한형제들 한명수 이사의 유쾌한 자기소개로 시작되었습니다.

“삶. 일. 말랑말랑. 부드럽게 씽킹. 한明수.”

여러분은 배달의민족의 또 다른 의미를 알고 계셨나요?
뜻밖의 질문에 짧은 정적이 흘렀습니다. 아마 많은 분이 동감하시겠지만, 저는 단순히 ‘가져다준다(delivery)’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실은 이보다 깊은 뜻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배달은 우리 민족을 지칭하는 용어이며, 밝은 땅에 사는 민족이라는 의미를 가졌습니다. 우리 한민족의 역사는 사실 단군 신화 이전에 배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 인간은 원래 고조선이 아니라 배달의 건국 이념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먹고 살기 위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먹고 사는 것을 해결한다.”는 배달의민족 디자인 철학도 홍익 인간의 정신과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숨겨진 의미를 알고 나니 우아한형제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1. 배민다움

– 정의하기
“모든 일은 정의를 내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요.”
배달의민족은 음식을 배달해주는 서비스입니다. 그럼 배민이 생각하는 배달 음식은 어떨까요?
“우리는 배달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행복한 시간’이라고 정의 내렸어요.”
배달의민족은 사람들에게 어떤 서비스를 제공해줄 것인가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여기서 모든 마케팅이 시작되었습니다.

- 일관성 있는 자기다움

01배달의민족 첫 포스터 디자인 [출처: bloter - https://www.bloter.net/archives/291640]

배달의민족을 출시하며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빛바랜 포스터 한 장이 사무실 기둥 한편에 걸려있는 사진입니다.
세련되진 않지만, 오히려 인간미가 느껴져 사랑스럽습니다.
배달의민족이 출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플랫하고 절제된 디자인이 트렌드로 떠올랐습니다. 유행에 맞춰 리뉴얼하고 새로운 마케팅을 펼쳐내는 다른 브랜드와 달리, 배달의민족은 굴하지 않고 본연의 색깔을 고수해왔습니다.
반듯한 고딕체가 줄지어 있는 앱들 사이, 바랜듯한 베이지색 배경에 아기자기한 일러스트가 왠지 반갑게 다가옵니다. 여러 배달 앱을 제치고 배달의민족에 더 애착이 가는 이유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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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움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것
“이거 해볼까요?”
“하지 마세요.”
“이런 건 어떨까요?”
“하지 마세요.”
“이거는요?”
“하지 마세요. 이건 우리가 아니잖아요.”

한명수 이사가 이야기 한 첫 입사때의 고충속에는 아마 이런 대화가 오가지 않았을까 짐작해봅니다. 이미 자리 잡아가는 브랜드 위에 새로 합류해 계속 새롭고 다른 것들을 제안하는 CCO와 하지 말라는 CEO. 크리에이터와 크리에이터가 만나서 하나의 소리를 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것입니다. 서로의 관점과 안목, 취향이 충돌하게 되니까요. 하지만 하나의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같이 일하는 사람을 이해하고 같은 방향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김봉진 대표를 이해하고 같은 취향을 가지고 일하게 되면서 일이 더 재미있어졌다는 한명수 이사의 이야기처럼요. 없던 걸 만들어서 새로운 걸 보여주기보다 나 다운 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자는 경영 철학이 ‘배민다움’을 쌓아왔습니다.

 

2. 대화하는 디자이너

- 잡담이 경쟁력이다.

03_1우아한 수다 타임 ‘우수타’ [출처 : 우아한형제들]

우아한형제들은 매주 수요일, 대표와 직원들이 둘러앉아 대화하는 시간을 가진다고 합니다. 일이 즐거워지려면 같이 일하는 사람을 이해해야 하니까요. 일하는 과정에 어떤 대화를 하느냐가 회사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수직적 문화를 가진 직장은 상급자의 갑작스러운 의사 결정의 번복보다 왜 그렇게 됐는지 이유도 모른 채 일해야 하는 사실이 직원을 더 괴롭게 만듭니다. 어느 쪽이든 직급 간의 소통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지요. 그래서 우아한형제들은 모든 직급이 한자리에 모여 대화를 나눕니다. 이 일을 왜 하는지 알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더 열심히 일하게 되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문화를 이뤘습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잡담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직원들과 주고받던 농담 한마디도 그냥 넘기지 않고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즐거움을 나누는 회사. 그렇게 배달의민족은 우리에게 맛있는 음식뿐 아니라, 맛깔난 재미까지 배달해 줍니다.

- 대화하는 디자인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 해요.”

주변을 둘러보면 항상 자기 얘기만 늘어놓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대화에 기브 앤 테이크가 없는 사람과는 얘기하기가 꺼려집니다. 디자인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자꾸 드러내는 것은 자기 자랑이지 대화가 아니니까요. 좋은 대화상대가 되려면 자연스럽고 진솔하게 다가가, 상대가 원하는 것을 듣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자신을 조금 숙이고 사람들이 원하는 것, 혹은 원하는지조차 자각하지 못했던 것을 발굴하고 감정을 건드릴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어야겠습니다.

04구독자 특성에 맞는 잡지 광고, 배달의민족 ‘잡지 테러’ [출처: 우아한형제들]

 

3. 재미있게, 의미롭게

- 재미의 의미

05배민 문방구에서 판매중인 다양한 상품들 [출처 : 우아한형제들]

배달의민족은 특유의 재치 있는 문구가 들어간 상품들로 많은 사랑과 주목을 받았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이런 걸 왜 만드냐는 끊임없는 의문이 따랐습니다. 하지만 이 질문의 답은 그야말로 단순명쾌했습니다.

“왜 만드냐고? 재밌으니까!”
쓸모없어 보이지만 재미있는 것, 그래서 팔리는 디자인.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나누는 일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게 다가오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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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를 내부에서 외부로

07배민 치믈리에 자격시험 [출처 : 우아한형제들]

“내부에서 대표님과 직원들이 재미 삼아 치킨 고사를 치렀는데, 이게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래서 이 재미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눠보자 해서 ‘치믈리에 자격시험’을 기획하게 됐어요.”
‘치킨’이라는 주제는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하지만, ‘치믈리에 자격시험’은 모두에게 낯선 일이었습니다. 세상에 없던 일이었기에 더 큰 화제를 불러왔습니다.

“그동안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일이지만, 우리는 늘 해오던 일이라 어렵지 않았어요. 회사에서 항상 재밌는 걸 하려고 하거든요. 사람들이 다음엔 어떻게 웃길 거냐고 물어보기도 해요. 그런데 우리는 웃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재미있는 방법으로 소통하는 사람들이에요.”
배달의민족은 ‘하고 싶지만, 하지 않는 일’을 발견해내고, 작은 일에 의미를 찾아 사람들과 즐거움을 나눴습니다.

- 창의 노동의 결과물

08지하철역 포스터 [출처 : 우아한형제들]

새하얀 종이에 커다란 글씨로 쓰인 문장 하나. 이를 보고 어떤 이들은 대충 만들었다는 오해를 할 법도 합니다. 우아한형제들은 이렇게 답합니다. “대충 만든 것 같지만, 엄격한 제약조건과 섬세한 기본기가 있어야 글자 하나로도 포스터를 가득 채울 수 있어요. 우리는 절대 대충 일하지 않아요.”

09목업 디자인 작업과정 [출처 : 우아한형제들]

일하는 동력을 몰입에서 끌어낸다는 배민이 일하는 방식은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아 보였습니다.

“매일 일러스트를 그리던 5년 차 직원에게 그림 대신 비누를 깎아 인형을 만들게 했어요. 일부러 힘들게 하려고요. (웃음) 힘들게 일하면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게 됩니다. (진지) 그동안 지켜오던 관습들이 다 무너지거든요. 같은 일을 꾸준히 반복하는 것은 숭고한 일이지만, 같은 방식을 되풀이하는 것은 재미없으니까요.”

같은 일도 계속 새로운 방식을 찾아 다르게 하다 보니, 일이 재밌어지고 더 창의적인 결과물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창의력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늘 하던 방식에 갇혀 아직 꺼내는 방법을 찾지 못한 건 아닐까요?

4. 마무리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우아한형제들이 창의력을 바라보는 관점이었습니다. 창의력은 어느 날 갑자기 짠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소통으로 익숙한 것을 매번 다르게 바라보려는 노력이 길러낸 힘이었습니다. 배달의민족이 사랑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같은 시선에서 함께 느끼고 호흡하면서, 사람들과 공감하는 대화를 해온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약 2시간에 걸쳐 이어진 한명수 이사의 강연을 요약하자면, 아래 세 단어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기다움, 대화, 재미
1. 자기다움을 잃지 않는 일관성 속에 새로움을 보여주자.
2. 디자인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로 대화를 채워가는 과정이다.
3. 우리가 재미있게 일해야 더 많은 사람과 재미를 나눌 수 있다.

강연을 통해 우아한형제들의 문화를 간접 체험하면서 ‘나는 얼마나 재밌게 일하고 있나, 일의 의미는 무엇인가, 일하는 과정에서 어떤 대화를 얼마나 하고 있나’ 자문해 보았습니다. 밝고 유쾌한 강연 덕분에 웃음이 넘치는 시간이었지만, 스스로 어떤 디자이너인지 다시금 돌아보게 됩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디자이너 입니까?

 

- 가치디자인그룹 박다운

* 성장의 씨앗이 되는 교실, Seed Class
항상 지식과 지혜에 목말라 하며, 업의 전문가로서뿐만 아니라 존재적 인간으로서 더욱 성숙하고 발전하길 바라는 그 바람의 씨앗에 동기를 제공하기 위해 Seed Class가 만들어졌으며 강연자는 Seed Man으로 명명하고 있다. 강의자와 강의 주제의 경계는 없으며 우리의 업에 맞닿아 있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시고 구성원의 역량발전에 기여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문적 가치와도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주제의 교실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 열번째 Seed Man, 한명수 이사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CCO(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사)
前 SK커뮤니케이션즈 / SK플래닛 상무(UX 디렉터)
FID, FRUM, INNOIZ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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