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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세상, 모두에게 평등할까?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디지털 세상, 느린 속도로 적응하는 디지털 약자

한 남자가 생선가게에서 영상통화를 합니다. 통화 영상 속 아내와 의논하며 좋은 생선을 고릅니다. 그게 무엇이냐고 묻는 생선가게 주인 할머니에게 남자는 “디지털 세상이잖아요~” 라고 답합니다. 생소한 단어를 듣고 의아한 할머니는 “뭔 돼지 털?” 이라고 말하고, 이 장면은 시청자에게 웃음을 유발합니다. 무려 18년 전에 인기 있었던 LG전자의 TV 광고입니다.

2019년 현재, 2001년에 방영된 이 광고를 보면 구식이고, 아득하게 느껴집니다. 디지털이라는 단어가 생소하게 들리던 시절이 고작 20년 전인데, 그동안 디지털 세상은 빠르게 변화해왔습니다. 요즘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표를 예매하고, 터치스크린 키오스크를 이용해 음식을 주문합니다. 현금과 카드 없이 QR코드를 찍어 결제하고, 은행에 가지 않고도, 1분도 안 되어 타인에게 돈을 송금합니다. 2001년에 “뭔 돼지 털?” 이라고 말씀하시던 할머니께서 이제는 디지털 세상에 적응하셨을까요?

LGLG전자 디지털LG PR(2001년) – 영상 출처 : Youtube

 

디지털 문화가 생활 곳곳에 뿌리 내리며 확산돼가는 요즘, 모든 게 디지털화되다 보면 그 분야에 무지한 사람은 그만큼 많은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고가의 스마트폰을 구매하기 어려운 취약계층, 사용이 서투른 중년층과 노년층, 신체가 불편한 장애인, 디지털은커녕 한국 사회에도 적응이 어려운 탈북자나 이주 노동자, 결혼 이민자 등은 일명 ‘디지털 약자’, 혹은 ‘디지털 문맹’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디지털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더 편리해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누군가는 점점 불편해지는 것입니다.

 

디지털 세상의 사각지대에 있는 고령자들

이 글에서는 디지털 약자 중에서도 고령자들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사람은 노화가 진행됨에 따라 신체 능력의 변화를 겪게 됩니다. 반응 속도가 느려지고, 시력과 청력도 약해집니다. 기억력도 감퇴하여 한 번 배운 것을 곧바로 다시 기억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처럼 신체가 둔해지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에 겁을 냅니다. 그나마 자식이 있는 사람들은 젊은이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바쁜 자식들에게 매번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어렵고, 자식들이 마음먹고 과외를 해주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고령자들은 그렇게 디지털 세상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됩니다.

02한국정보화진흥원자료 – 출처 : 파이낸셜뉴스

 

위 그래프를 보면 디지털을 활용하는 수준이 연령대별로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장년층 이상의 디지털 활용능력은 심히 단순한 작업에 그칩니다. 예를 들면 유튜브 영상을 보거나, 지인에게 사진을 전송하는 것, 인터넷 뉴스를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할 줄 모르기 때문에 미처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정보와 기술은 더욱 무궁무진합니다.

예컨대, 이제는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은행 업무를 볼 수 있습니다. 시중은행은 창구에서 예금상품에 가입하는 고객에게 디지털금융 고객보다 더 낮은 금리를 적용하고, 대출은 반대로 높은 금리를 매깁니다. 은행에 방문한 고객들이 되려 손해를 보는 상황입니다. 심지어 최근 은행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점포를 줄이거나 창구 규모를 축소하고 있어 직접 은행에 방문하려면 예전보다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 인터넷으로 은행 업무를 보는 법을 알지 못하는 어르신들은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후 1시가 되면 대부분의 은행 창구는 어김없이 대기 고객들로 가득 차고, 번호표에는 40~50분의 대기 시간이 찍힌다. 대기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10명 중 7~8명은 고령층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들이 손에는 현금을 끼워진 통장을 들고 있다. 대부분 단순 입출금이 목적이다. 고령층은 잘 이체된 게 맞냐며 뻔한 질문을 은행원에게 건넨다. 그들 뒤에선 기다림에 지친 고객들의 핀잔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아유, 왜 저런 걸 물어보고 있대.”
출처 : 온라인 디지털 경제미디어 키뉴스(KINEWS)(http://www.kinews.net)

기차표 전쟁에서도 디지털 약자들의 완패입니다. 코레일 웹사이트나,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쉽게 표를 예매한 젊은이들은 편하게 앉아서 가고, 예매하지 못한 노인들은 뒤늦게 창구에 줄을 서서 남은 입석표를 구입합니다. 어르신이 옆에 서 있으니, 좌석에 앉아있는 젊은이들도 마음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03명절 기차표 전쟁, 창구에 줄을 서서 기차표를 사는 고
객들은 대부분 고령자들 입니다.  -사진 출처: 중앙일보

 

패스트푸드점에는 무인 주문을 하지 못해 끙끙거리다가, 포기하고 나가는 고령의 손님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188922_103488_415패스트푸드점 무인 주문 키오스크에서 음
식을 주문하는 사람  – 사진 출처: 맘스터치

 

‘터치’ 하세요, ‘테이크아웃’, ‘후렌치후라이’ 작은 글씨를 겨우 읽고 보니,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는 외국어 표현들입니다. 우왕좌왕 하는 사이 기계는 시간이 초과되었다며 처음 화면으로 돌아갑니다. 뒤에 줄 서 있는 다른 손님들의 한숨 소리가 들리자, 포기하고 카운터에 줄을 섭니다. 때로는 카운터에 도움을 요청하면 주문은 기계로 하세요. 라는 냉정한 대답이 되돌아오기도 합니다. 같은 돈을 내고 음식을 먹는데, 가게 점원과 다른 손님들에게 골칫거리가 된 기분이 듭니다. 고령의 손님들은 이러한 사회에서 소외감을 느낍니다.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을 활용하지 못하면 대중교통 이용에도 불편을 겪습니다. 지역별 공용 자전거 대여, 택시 호출, 버스 시간표 확인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고령자들은 자전거를 탈 줄 알아도,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자전거를 대여하는 방식이 어려워 공용자전거를 이용하지 않습니다.

05자료 서울시설공단 – 출처 : 통플러스 그래픽뉴스

 

위 그래프는 서울시의 공용자전거 따릉이의 연령대별 이용 현황입니다. 청년층과 중년, 노년층의 이용률이 현저히 차이 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가 대두되자 ‘디지털 래그 (Digital Lag)’ 라는 신조어도 생겼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뒤떨어지는 현상’이라는 뜻입니다.

 

고령자들을 보는 사회의 시선

디지털 소외계층을 대하는 사회 구성원들의 냉랭한 시선은 고령자들을 더욱 움츠러들게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다수의 고령자들은 나이가 많은 스스로를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돈’으로 가치가 매겨지는 사회에서, 돈을 벌지 못하는 노인계층은 무능하고 쓸모없는 존재로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노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더욱 적어지고, 노인들의 입지는 더욱더 좁아집니다. 한계에 부딪힐수록 본인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또한 잘 알지 못하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보이스피싱 등의 사기 범죄가 기승하기 때문에 노인들은 신기술을 배우는데 더 겁을 내곤 합니다. 괜히 어설프게 알았다가 사기당할까 처음부터 시도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노년 인구는 해마다 급증해 2025년이면 전 국민의 2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국민의 20%가 스스로 무가치하다고 느끼게 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에도 해악이 됩니다. 노년 인구의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를 박탈하고, 복지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은 나라 경제적으로도 손해입니다.

 

디지털 접근성 개선 노력

디지털 생활방식의 적응 정도에 따른 삶의 질 차이는 심각합니다. 디지털 격차가 단순히 생활편의를 누리지 못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정보 격차로 이어지고, 정보 격차는 곧 경제 격차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정부와 기업에서 적극적으로 디지털 접근성 개선방안을 논의해야 할 때입니다.

그렇다면 디지털 약자들의 디지털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요?

삼성전자, LG전자 등 스마트폰 제작 회사에서는 노년층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고령자와 저 시력 시각장애인을 위해 글씨 크기를 크게 조절할 수 있게 하고, 글씨를 읽어주는 기능을 탑재하고 있습니다. 화면을 터치하는 방식이 어려운 고령자들을 위해 폴더 모양의 스마트폰도 제작하고 있습니다.

 

2014092602109919807002[1]효도폰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LG전자의 와인폰 – 출처 : 연합뉴스

 

더불어 정부기관, 대학교, 요양원 등에서도 노년층을 위해 스마트폰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카카오톡 등의 메신저를 활용해 메시지를 보내는 법, 애플리케이션 설치 방법, 내가 받은 사진을 친구에게 전달하는 방법 등이 커리큘럼에 포함됩니다. 정부에서도 정보 격차를 줄이기 위해 2004년부터 웹 접근성 제고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입니다. 또한 은행에서는 노인 전용 창구를 개설하고, 홈쇼핑에서도 노인 전용 콜 센터를 운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 충분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디지털 교육의 커리큘럼이 발전하는 디지털 세상에 비해 너무 단순합니다. 학습 단계별로 심화과정의 커리큘럼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심지어 그러한 교육 기회도 모두에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디지털 교육을 받지 못하는 다수의 고령자들을 위해 노인정과 동사무소, 시골 마을의 마을회관까지 디지털 교육처를 확대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것입니다.

무인 주문을 할 수 있는 대부분의 키오스크 기계에서는 큰 글씨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기계에서 외국인을 위한 영어 서비스를 따로 제공하듯이, 고령자들을 위해 UI를 단순화하고, 대기 시간을 늘리며, 불필요하고 어려운 외국어 표현을 자제한 서비스도 따로 제공해야 합니다.

한편, 통신사에서 고령자들을 위해 내놓은 스마트폰 UI인 실버 모드, 이지 모드 등이 되려 차별적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50·60대도 겉으로는 자식들에게 별로 좋은 것 필요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 속내는 좋은 제품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들에게 ‘효도폰’ 같은 이름의 기능 빠진 스마트폰을 구입한 뒤 거기에 피처폰처럼 보이는 UI를 설치하라는 것은 서운한 일이다.

이들을 위한다고 ‘실버폰’이니 ‘어르신UI’니 하는 것은 일종의 차별처럼 보인다. 필요 없어도 쿼드코어에 풀HD 디스플레이 같은 하드웨어를 쓸 것을 기업들도, 또 이용자 스스로도 바라지만 어른들에게는 ‘그런 것 필요 없어’, ‘이것만 쓰면 돼’라고 한정 지어 말하는 것은 일종의 차별이다. 풀HD 디스플레이, 더 빠른 하드웨어, 새로운 기능들은 아무리 나이 들어도 쓸 수 있다.

출처: http://www.bloter.net/archives/164593 글쓴이 최호섭

고령자용 UI도 필요하지만, 고령자용이라고 해서 디자인적 요소를 아예 배제하거나 고사양의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 것도 차별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고령자들도 교육을 통해 충분히 스마트폰의 다양한 기능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데, 편견을 가지고 일찌감치 배제한 것은 아닐까요? 생각해 볼 만한 문제입니다.

 

디지털 소외계층을 배제하고는 우리 사회가 건강한 사회를 이룰 수 없습니다. 건강한 디지털 사회를 이루기 위해 정부와 기업의 노력뿐만 아니라, 개인의 배려가 필요할 것입니다.

 

-가치UX그룹 권은별

 

타이틀 이미지 출처 : Music vector created by freepik – www.freepi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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