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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대화, 다른 세상에서의 90분

당신은 어둠 한 가운데 있어본 적이 있나요? 정말 빛이 1도 없는 그런 곳이요.

아무것도 보지 않았는데 보았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위의 질문은 ‘어둠 속의 대화’ 라는 전시에 다녀오면 ‘네’ 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어둠속의-대화3어둠 속의 대화 전시장 외벽

 

‘어둠 속의 대화’는 바로 빛이란 존재가 없는 공간에서 90분간 체험하는 전시입니다. 이 전시는 1988년 독일에서 시작된 이후로 29년간 160여개 지역에서 열린 국제적인 전시 프로젝트라고 합니다.

처음 빛이 없는 공간에 들어가면 일단 무섭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살던 세상의 관념이 완전히 바뀌니까요. 일단 앞이 안보이니 안경은 필요 없구요. 시계는 물론, 사람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외모는 전혀 알 수 없는 거죠.

시각이라는 감각이 차단을 당하니, 촉각과 청각이 굉장히 예민해집니다.

이곳이 어디인지, 내 주변에 대한 단서를 하나라도 찾기 위해 제가 갖고 있는 모든 신경이 곤두섬을 느낍니다. 발끝에서 느껴지는 지형의 질감과 각도, 그리고 손끝에서 느껴지는 벽의 질감은 잃어버린 위치 감각을 찾는데 도움을 줍니다.

 img3어둠속의 전시장 내벽

 

그러면 그 깜깜한 곳에서 어떻게 전시를 즐길 수 있을까요?

일단 로드 마스터 라는 분이 이 전시의 길잡이 역할을 해줍니다. 정말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100% 의지를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로드 마스터만이 이 공간을 제일 잘 알고 있으니까요. 로드 마스터의 말대로 귀를 기울이고 발걸음을 움직이고, 앉고, 누워보고, 느낍니다.

새소리, 바람소리, 나무잎이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손 끝에 만져지는 나무 가지 만으로도 그 공간은 숲이 됩니다.
모터소리, 느껴지는 바람, 조금씩 뿌려지는 물방울만으로 배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것 같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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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80%의 시각 감각에 의지하는 전시 밖의 세상이 아니니까요. 기존의 관념이 뿌리채 흔들리는 동시에, 그 공간에 적응하게 됩니다. 어떻게 든지요. 평소 의자에 앉을 때 눈으로 의자를 보고 바로 앉는 다면, 이곳에서는 입장할 때 나눠 준 화이트 캐인 (시각장애우 용 흰색 지팡이)으로 의자의 존재를 확인 후 손으로 더듬더듬 위치를 확인 후 조심스럽게 앉게 됩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와 닿습니다. 이 말을 증명하듯 처음 입장할 때 느끼는 두려움이 자유로움 혹은 편안함으로 바뀝니다. 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 더 편안함을 느끼는 걸까요?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 전시장에서의 환경과 평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매일 겪는 출근 길 풍경은 회색 빛입니다. 숨 쉴 공간만 있는 지하철과 모르는 사람과 30분이든 1시간이든 촘촘히 붙어서 가야 하는 버스 안. 누군가 통화를 하게 되면 의도치 않게 듣게 되는 남의 사생활. 그리고 누군가에게서 풍겨오는 갖가지 상상력이 동원되는 냄새까지.

출퇴근길이 아니어도 우리는 그야 말로 오감이 피로한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감각기관이 열.일(?) 하는 바깥 세상과 달리 이 전시장 안은 다섯 개의 감각 기관 중 우리가 가장 의지하는 눈을 쉬게 해주는 곳이기 때문인지 편안하다고 느끼나 봅니다.
얼마전 ‘쎄시’라는 여성 잡지에서 흥미로운 칼럼을 읽게 되었습니다.

 

‘심심해서 재미있다’

제목부터 확 구미가 당기는 글이었습니다. 이 칼럼이 하고자 하는 말은 우리에게 노출되는 대부분의 콘텐츠가 너무 자극적이라 오히려 무료하고 심심한 콘텐츠에 마음을 빼앗긴다 라는 것입니다. 진한 감동도 없고, 큰 웃음도 없지만, 감정을 쉬게 해줄 수 있기 때문에 인기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 칼럼에서도 제가 전시에서 느낀 것처럼 여백이 주는 편안함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여백을 통해 여유를 찾고 싶으신 분이 있다면 이 전시를 강력 추천합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 전시를 체험하고 나오면 풍족한 전시였다고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이 전시를 충분히 즐기기 위해서는 단 하나만 준비 되면 됩니다.
바로, 기존 우리가 갖고 있던 관념 (어둠은 무섭다, 장애우는 우리가 도와줘야 할 존재이다 등)들을 놓을 용기가 있다면 말입니다.

 

 

-UX1 컨설팅 그룹 김소연

 

 

 

[참고문헌]
고현경, “심심해서 재미있다”, 2017, http://www.ceci.co.kr/article/article_detail.do?idx=3372

[메인이미지출처]
어둠속의 대화 http://www.dialogueinthedar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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