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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호텔과 우주대가족 – 시인 윤제림과 함께 시 읽는 겨울 저녁

라이트브레인의 여덟번 째 Seed Class

혼란한 정국, 시대의 속악성과 비천함이 극에 달했던 한 해.
상투적이기만한  다사다난이란 수식어가 너무나 어울리는 2016년 끝자락.
라이트브레인의 송년회장은 다소 살짝 들뜬 분위기 속에서 윤제림 시인을 만났고
시인은 매주 신문에 연재 중인 컬럼을 투고 전에 미리 낭송하는 것으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춥지만, 우리
이제
절망을 희망으로 색칠하기
한참을 돌아오는 길에는
채소파는 아줌마에게 이렇게 물어보기
희망 한단에 얼마에요?

*희망 한 단 컬럼 중. [아시아경제 - 윤제림의 행인일기]

 

시인이 강연 내내 화두로 꺼냈던 휴머니티,
생명에 대한 공경과 예의, 그리고 인연과 윤회.
주변의 삶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하려는 고뇌들은
시인이 서두로 이야기한 “올해 너무 많았던 기막힌 일들에 당최 면목이 없을,
묵은해의 물러갈 채비와 다가올 새해”에 대한 ‘한 단의 희망’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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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윤제림 시인의 시를 접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TV CF에서였습니다.
2009년 SK 기업광고였던 ‘제춘이네 조개구이집’은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만든 시인의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제춘이네 조개집’ 이전에 국민차 티코의 ‘작은 차 큰 기쁨’도 윤제림 시인이 만든 카피라고 하니 역시 삼십 년 이상 현업과 강단에서 활약한 카피라이터로서의 내공도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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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주)기업광고 – 어머니편>

 

재춘이 엄마

재춘이 엄마가 이 바닷가에 조개구이 집을 낼 때
생각이 모자라서, 그보다 더 멋진 이름이 없어서
그냥 ‘재춘이네’ 라는 간판을 단 것은 아니다
재춘이 엄마뿐이 아니다
보아라, 저
갑수네, 병섭이네, 상규네, 병호네,

재춘이 엄마가 저 간월암(看月巖) 같은 절에 가서
기왓장에 이름을 쓸 때
생각나는 이름이 재춘이 밖에 없어서
‘김재춘’이라고만 써놓고 오는 것은 아니다
재춘이 엄마만 그러는게 아니다
가서 보아라, 갑수 엄마가 쓴 최갑수, 병섭이 엄마가 쓴 서병섭,
상규엄마가 쓴 김상규, 병호 엄마가 쓴 엄병호,

재춘아. 공부 잘해라!

– 시집『그는 걸어서 왔다』(문학동네, 2009)

 

‘재춘이네 조개구이집’ 광고는 그의 시를 모티브로 삼은 스토리텔링으로 SK가 전달하고자는 캠페인 메시지인 ‘행복’으로 우리 시대 어머니들의 자식 사랑을 잔잔한 감동으로 그려냈습니다.
메마른 세상에 의지가 되는 그 소중함의 공감대,
늘 가족을 위해 헌신하셨던 어머니를 돌아보게 하고. 우리네 삶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게 만드는 그 가족애는 휴머니즘의 뿌리가 되어 마음의 상처들을  치유하고 또 위로를 받게 됩니다.

그런 것이었을까요?

윤재림 시인이 간절히 믿고 있는 문학적 신념으로, 혹은 삶을 살아가면서 철석같이 믿고 따르고 있다는
‘지구호텔과 우주대가족‘이란 왠지 고개를 갸우뚱할 만한 제목의 강연은

‘지구라는 별에 주인으로 자리 잡고 있는 인간’

바로 우리라는 민족 중심의 편견과 인류 중심의 고집을 버린 지구공동체, 나아가 지구 중심적인 사고를 버려야만 그나마 희미하게 보일 수 있을까 하는 우주공동체 의식까지 주제에 담고 있었습니다.

 

들녘

냉이 한 포기까지 들어찰 것은 다 들어찼구나
네 잎 클로버 한 이파리를 발견했으나 차마 못 따겠구나
지금 이 들녘에서 풀잎 하나라도 축을 낸다면
들의 수평이 기울어질 것이므로

―정채봉(1946~2001)

 

시인이 극찬하며 낭송해주었던 고 정채봉 시인의 ‘들녘’은 우리 지구, 생명세계의 조화로운 균형, 그리고 무엇 하나 하찮은 것이 없다는 소중한 생명중시의 휴머니티를 짧은 싯구에 이쁘게도 담아내었습니다.

 

“인간의 관점에서는
제것이 아니라면
누구 허락을 받고서
다른 생명들을 경시하는가.“

 

올 한 해 관심 있게 읽었던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이야기하는 모순의 역사와도 같은 인간의 역사는
유대인 대학살, 르완다 집단학살과 여성에 대한 학대와 굴욕을 강요한 사실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자본주의 발달 과정에서 서구인들이 비서구인들을 착취하고 공격하고, 어쩌면 사피엔스의 역사 자체가 다른 인간 종들을 학살하면서 시작되었다면 애초에 우리는 학살자의 피를 안고 태어났으니 원죄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당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류에게 불필요한 종들을 멸절시킨 사피엔스가 아이러니하게도 환경보호와 멸종위기 동물 보호에도 앞장선다는 것은 그나마 작은 희망의 불씨는 아닐까요?

남은 인류의 그 희망은 강연 내내 시인이 역설한 귀한 생명, 그 생명에 대한 공경과 예의와 그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스탠퍼드대 과학자 부부인 폴 에어릭과 엔 어어릭부부는 <진화의 종말>에서 “우리가 지배적인 동물이 될 수 있었던 그 특성들을 지구 구성원들 모두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데 이용해야하며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윤리와 책임, 의식혁명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 우리 모두 이 작은 행성에 함께 갇혀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하는 것”이 바로 그 혁명의 전제일 것입니다.

지구의 주인이라 자칭하는 우리 인간이 가져야할 희망과 의무.
그리고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 를 다시 생각해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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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그렇게 쫓기는지 바쁘기만 한 연말,
매서운 추위에도 한걸음에 달려오셔서 귀중한 시간 함께 해 주시며
따뜻한 시와 넉넉한 마음을 나눠 주신 윤제림 시인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IMC그룹 이정근

 

 

* 성장의 씨앗이 되는 교실, Seed Class

항상 지식과 지혜에 목말라 하며, 업의 전문가로서뿐만 아니라 존재적 인간으로서 더욱 성숙하고 발전하길 바라는 그 바람의 씨앗에 동기를 제공하기 위해 Seed Class가 만들어졌으며 강연자는 Seed Man으로 명명하고 있다.
강의자와 강의 주제의 경계는 없으며 우리의 업에 맞닿아 있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시고 구성원의 역량발전에 기여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문적 가치와도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주제의 교실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 여덟번째 Seed Man, 윤제림시인

시인이자 카피라이터
충북 제천에서 나고 인천에서 자랐다. 1987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했다.
시인 윤재림으로 시집 ‘미미의 집’, 황천반점’, 삼천리호 자전거’, 사랑을 놓치다’, 그는 걸어서 온다’, ‘새의 얼굴’ 등과 카피라이터 윤준호로 ‘젊음은 아이디어 택시다’, ‘카피는 거시기다’ 등의 관련 저서를 냈고
현재 서울예술대학교 광고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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