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트렌드리뷰(국내편) – 잘 나가던 디자인 기업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업계트렌드리뷰(국내편) – 잘 나가던 디자인 기업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업계트렌드리뷰(국내편) – 잘 나가던 디자인 기업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Category
Share Story

한국 디자인 기업들의 경우는 어떠할까요?
국내편에서는 디자인 전문기업에 대한 진단에 그치지 않고, 디자인을 혁신을 위한 도구로서 바라보는 조금 더 넓은 주제를 담고자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글이 좀 길어진 점 이해 부탁드립니다.

사실 한국의 상황을 얘기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껄그럽습니다.
우선 1편에서 정리한 미국 사례와 같이 시장 흐름에 대해 인용할만한 통계 자료나 권위자의 주장이 드물 뿐 아니라, 제가 어떠한 이유를 언급하든 이는 제 주관적인 견해가 많이 내보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어려운 시장 상황을 주관에 기대어 진단하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울 뿐 아니라, 진단에서 진전하여 해법을 제시하는 것은 현 상황을 어렵게 버티고 있는 기업들에게 혹시 불편하게 들리진 않을지 우려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국편의 마무리가 늦어진 이유입니다.

우선 전편에서 주로 얘기되었던 미국 디자인 기업의 M&A 사례에 비추어 한국은 어떠한지 궁금해 하실 것 같아 간단히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국내 디자인기업 인수사례 및 동향 

한국에서는 M&A에서 M(합병)이 빠진 디자인 관련 기업의 피인수 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포트폴리오(박희운 煎대표), 포스트비주얼(이정원/설은아 대표), 바이널아이(조홍래 대표) 등이 대표적입니다.

세 회사 모두 2000년대 초반 웹 에이전시로 출발했지만, 피인수 당시에는 광고, 마케팅, 뉴미디어 분야에 특화된 광고 전문 기업으로 포지셔닝 되어 있었고, 인수자는 WPP, 퍼블리시스 등 글로벌 광고대행사 그룹인 것이 공통점입니다.
모두 지분 인수 방식이며, 합병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광고분야가 아닌 UX 또는 Design-Tech 기업의 피인수 사례로는 카카오의 투자 전문자회사인 케이벤처스의 탱그램디자인연구소 인수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도 지분인수 방식이었고, 카카오의 IoT 사업에서 시너지를 보일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별 소식이 없던 차, 올해 케이벤처스가 지분의 일부를 정리함으로써 지배력을 가진 모기업이 아닌 일부 지분을 가진 관계 기업으로 전환 되었습니다.

ST유니타스의 웨더디자인 인수와 같이 양사가 가진 역량을 더해 시너지를 키우려는 시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뭔가 눈에 띄는 사례를 찾긴 힘듭니다.

국내에서는 디자인 기업을 굳이 인수하겠다고 하는 경우도 드물고, 전반적으로 디자인 기업들의 사정 역시 녹록지 않습니다.
다양한 디자인 분야의 경영자, 교수분들을 만날 기회가 많은 저는 “최근 잘나가는 디자인 분야는 UX 밖에 없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자주 듣습니다.

하지만 UX 디자인 분야라고 해서 상황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닙니다.
현재 디자인 기업, 좀 더 좁혀 디자인 서비스 제공을 업(業)으로 하는 에이전시들의 형편이 어려운 원인은 대기업들이 디자인 조직을 내재화하려는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입니다.

디자인의 중요성을 더 크게 인식할수록 제품과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고도화하고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내부에 두는 것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편이라 판단합니다.
결국 외부 전문가의 역량에 의존하던 상황이 현저히 줄어드는 반면, 내부에 디자인 전문가나 UX 조직을 세팅하려는 시도는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대기업이 조직을 만드는 일도 쉽지 않다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UX 디자인 전문 조직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하더라도, 구인을 위한 의사결정과 실행까지의 라인업에서 내부 전문가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량(定量)보다 정성(定性)을 근거로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과정이 더 힘들 듯, UX 관련 인재가 부족한 시장 환경에서 스펙이 아닌 실력에 대한 검증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기업이 매우 적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나마 실무형 전문가는 에이전시에 꽤 포진하고 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대기업이 선호하는 스펙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드뭅니다.

대기업은 고유의 시스템과 관료적인 문화에 녹아들 수 있는 대기업 출신을 선호합니다.
구인이 힘든 상황임에도 특정 출신의 한정된 인원들로 돌려 막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에이전시에서 대기업으로의 인력 유출은 현재로서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다만 포털, 커머스 등의 카테고리 내 Top 서비스 기업이나 스타트업에서는 스펙보다 경험과 능력을 중요시 하기 때문에, 에이전시에서의 이직 사례가 최근 많이 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디자인을 혁신과 전략의 도구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전문가의 영입과 권한의 부여가 뒤따라야 합니다.
교과서 같은 해법이지만, 실제로 제대로 실행하는 기업은 드뭅니다.

디자인 씽킹을 전략으로 변모시키는 과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 평가 받는 펩시코(PepsiCo)의 사례를 볼 때에도, 이들이 가장 우선 한 것은 최고 디자인 책임자의 영입이었습니다.
3M에서 모로 포치니(Mauro Porchini)를 영입했는데, 그가 입사 전에 요구한 것은 디자인 스튜디오와 그 외 자원들 그리고 최고 임원 회의 참석이었습니다.

모로 포치니는 디자인을 기업 내에서 성공적으로 키우려면 다음과 같은 특정한 환경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첫째, 적절한 유형의 디자인 리더들을 영입해야 합니다.
둘째, 최고경영진으로부터의 적절한 지원이 필요합니다.
셋째, 적합한 디자인 리더와 고위 경영진의 지원까지 갖춰진다면 그 다음에는 다양한 대상으로부터 가능한 많은 외적 지지를 얻어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다음 디자인 조직은 신속하게 승리를 거둬야 합니다. 조직 내에서 디자인의 가치를 빠르게 증명해야만 합니다.

– 인드라 누이(펩시코CEO)는 어떻게 디자인 씽킹을 전략으로 변모시켰나(Harvard Business Review Korea, 2015년 9월호) 중 일부 요약

디자인 기업은 왜 어려운가?

현 시장 상황에서 디자인 기업만 특별히 사정이 안좋은 것은 아닐 겁니다.
경기 침체와 불확실성으로 요동치는 경제 여건 앞에 모두가 어려워합니다.
특히 역량 제공 사업을 하는 기업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원청이 허리를 조이면, 하청은 당연히 더욱 일거리가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여파는 레드오션의 피라미드상에서 하위에 위치한 기업일 수록 더 큽니다.
상위 기업들은 당장 눈을 낮추면 아래로 내려올 수 있지만, 아래에 위치한 기업은 더 떨어질 곳이 없습니다.

대기업이 구조 내에서 IT와 BPO(Business Process Outsourcing)를 담당하던 자회사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강한 연결 고리로 일감과 수익을 창출하던 관행의 고리가 서서히 느슨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뵌 한 임원분의 말씀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우리의 위기는 재무적인 위기가 아닙니다. 더 이상 Man/Month로 일을 수주하는 모델로는 미래가 없습니다. 우리만의 역량과 비즈니스 플랫폼 발굴이 필요합니다.”

이는 디자인 기업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의견입니다.
디자인 기업이 어려운 것은, 대기업의 디자인 역량 내재화와 경제 침체로 인한 여건 악화와 더불어, 변화하는 시장 내에서 새로운 역량을 발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꼭 하나를 덧붙이자면,
‘여전히’ ‘불공정한’ 관행 역시, ‘을’인 디자인 기업을 더욱 힘들게 하는 데에 한결같이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디자인 기업은 왜 변화하지 못하는가?

디자인 기업이라고 해서 변화에 대응하지 않고 안주하고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다만, 그 기업의 노력이 시장에서 인정 받고 포지션을 구축할 수 있는 임계점 앞에서 지속되지 못하고 중단된 경우가 많습니다.

변화를 위해서는 투자가 필요한데, 이를 위한 자원은 기존의 사업을 잘 영위하여 남은 잉여 자금 또는 부채를 통해 조달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 상황이 나빠지고 수익이 악화되면, 재무적으로 취약한 디자인 기업들은 투자를 위한 재원 조달이 막히게 됩니다.

작은 기업의 경우 부채는 투자를 위한 재원이기도 하지만, 재무적으로 취약할 때 긴급히 사용해야 하는 자금의 완충재 역할이 우선일 수 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투자를 위해 조달한 부채가 경영성과로 이어지지 못할 경우, 완충 지대는 얇아지고 재무적으로 급속도로 어려워지는 상황을 초래합니다.

재무적으로 어려워지면 구조조정을 하거나 더욱 가격 경쟁에 몰두하는 경향이 강해지는데, 이는 자원의 취약, 역량 약화, 수익률 악화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 디자인 기업들은 변화가 아니라 생존을 더 중요한 화두로 던집니다.
생존과 사업 성과에 집중하다 보니 ROI를 강조하는 사업부 책임제로 전환하는 디자인 아웃소싱 기업들이 늘고 있습니다.

참조. UX디자인 기업이 ROI를 강조해서는 혁신할 수 없는 이유

블루오션을 출간했던 INSEAD의 김위찬, 르네 마보안(Renee Mauborgne)교수는 최근 ‘레드오션의 함정’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주장합니다.

시장 창출 전략과 비용 절감 전략을 똑같이 보는 기업은 현재의 상품이나 서비스에 어떤 요소를 제거하고 줄일지에 골몰하느라 정작 그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치를 향상하기 위해 어떤 점을 개선하거나 만들어내야 하는지 별로 고민하지 않는다. 요점은 시장 창출 전략이 ‘일거양득’전략이라는 것이다. 시장 창출 전략은 차별화와 비용 절감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지라도 그 상품이나 서비스는 구매자의 눈에 확연하게 차별화돼 보일 수 있다.

 

디자인 기업의 전략은 무엇인가?

“당신 회사의 전략을 35개 단어 이하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하바드 비즈니스 스쿨의 데이비드 콜린스(David Collins), 마이클 룩스테드(Michael Rukstad)교수의 질문입니다.

 

A

The Strategic Sweet Spot in 3C

지금까지 우리는 대부분 3C의 중심, 경쟁자와 차별화 되지 못한 시장에서의 경쟁에 몰두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만의 영역, 고객이 필요로 하지만 경쟁자들이 제공할 수 없는 차별화 역량을 제공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떻게 하면 그 역량을 끌어낼 수 있을까요.

제조기업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인더스트리 4.0,
IoT/Wearable의 만연화,
UX 디자인이 더욱 부각되고 디자인 자원을 더욱 필요로 하는 지금 시점에 디자인 기업이 가져가야 할 차별화된 전략은 무엇일까요?

저 또한 ‘고객들이 필요로 하지만 경쟁자들과 싸우지 않고 차지할 수 있는 시장’이 무엇일지, ‘우리의 역량은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매일 고민하고 있습니다.

부디 간절한 바램은
결코 이 지난하고 긴 싸움에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고, 원하는 바를 좋은 성과로 이루어 내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라이트브레인 황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