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에서 시작된 지하철 공간에 대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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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시작과 끝을 출근과 퇴근으로 마무리하는 요즘, 지하철에서 서서 가나 앉아서 가나 불편하긴 매 한가지입니다.

겨울에는 비좁은 좌석 때문에, 여름이면 살이 닿아서, 또 요즘에는 스마트폰을 두 손으로 팔을 넓게 벌려가며 사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불쾌함을 느끼곤 합니다.

“이런 문제들은 과연 사람 때문에 발생하는 걸까, 아니면 시설 때문일까?”하는 작은 궁금증이 이 글의 시작입니다.

문득 우리 나라 지하철의 좌석 사이즈가 궁금했습니다.
검색 사이트에서 찾아보니 놀랍게도 아니 절망스럽게도, 지하철의 좌석 사이즈는 40년 째 그대로라는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출처 참고)

기사에 따르면,
1979년 성인 남성의 평균 키는 166.1cm, 엉덩이 둘레는 90.2cm이고, 2010년의 평균 키는 172.4cm, 엉덩이 둘레는 94.8cm로 켜졌다고 합니다.
팔꿈치 사이 너비가 49cm 인데, 현재 좌석의 가로 길이는 45cm로 옆 승객과 팔이 포개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재미난 사실은 같은 기사로 2000년 뉴스에 기사화가 되었고, 다시 2013년, 2015년에 기사화가 된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지만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서울 메트로 측에 따르면 2017년 좌석 사이즈를 늘릴 계획이라고는 하지만, 단순히 사이즈를 늘리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지하철에서의 불편함은 좌석 사이즈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불편함은 공간이라는 큰 개념에서 출발합니다.
공간에 대한 연구는 건축학, 심리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되어 왔지만, 연구결과는 모두 한 목소리로 “지각된 공간은 인간의 인지, 행동, 정서적 측면에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 에드워드 홀이라는 미국 인류학자는 근접학 (Proxemics) 혹은 공간학 이라는 이론을 만들었습니다.
근접학이란 사람의 공간과 문화, 커뮤니케이션의 관계에 대한 연구입니다.
즉, 공간을 어떻게 인지하는지에 따라 커뮤니케이션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문화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또한 공간이 인간 뇌의 인지작용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신경 건축학 (Neuroarchitecture)이라는 별도의 학문이 있고, 많은 회사에서 직원들의 창의성을 위해 ‘공간 디자인’에 신경을 쓰는 것만 봐도, 공간에 대한 중요성은 이미 자연스럽게 인식되어 있습니다.

미국 교통 연구 위원회 (TRB, Transportation Research Board)에서는 기존 지하철 내부 디자인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2011년부터 2012년 사이에 뉴욕 지하철을 오가는 승객들의 행태를 조사하였다고 합니다.
조사 결과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들이었지만, 이를 반영하여 수정한 지하철의 내부 디자인이 매우 흥미로와 간단히 소개합니다.

조사 결과, 승객들은 파티션이 옆에 있는 좌석에 앉는 것을 선호했고 자리가 있더라도 꽉 끼어서 앉아가기 보다 서서 가는 것을 선호했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안쪽에 서서 갈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하더라도, 문 근처에 서서 가는 것을 더 선호한다는 사실입니다.

짧은 거리를 가는 승객들의 경우, 좌석의 배열이 일자(현재 우리나라 좌석)이건, 정 방향을 보고 가로로 배치된 좌석(airline-style) 이건 개의치 않아 했습니다.
장거리 승객의 경우, 일자로 배열된 좌석 보다 비행기 좌석과 같은 배열을 선호했다고 합니다.

더 상세한 결과는 글 하단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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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은 현재 우리나라의 지하철 내부 레이아웃과 가장 유사한 뉴욕의 전형적인 지하철 내부레이아웃 입니다.
현재 레이아웃의 가장 큰 문제는 마주보고 있는 출입문이 대칭적으로 위치해 있어, 출입문 근처의 혼잡도가 증가하는 점입니다.

승객들은 또한 가로로 놓여져 있는 손잡이 (Strap) 보다는 기둥을 선호한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교통 연구 위원회는 이러한 사실들을 바탕으로 아래와 같이 레이아웃을 수정하였다고 합니다.

02

수정된 레이아웃은 서서 가는 승객과 앉아 가는 승객을 모두 배려하였습니다.

혼잡도를 감소시키기 위해 대칭적으로 위치한 출입문을 비 대칭적으로 바꾸었습니다.
또한 출입문 근처에 Branching pole (Split pole)이라는 세 갈래 형태로 된 기둥을 설치해 보다 많은 사람이 손쉽게 잡을 수 있도록 수정하였습니다.
단거리를 가는 사람들을 위해 가로로 된 좌석을 문 근처에 위치 시키고, 장거리를 가는 승객들을 위해 전동차 끝에는 비행기 좌석과 같이 레이아웃으로 시트를 배치시켰습니다.

위의 레이아웃을 보니, 대만의 MRT가 생각났습니다. 2014년 대만 타이페이를 방문했을 때 탔던 MRT가 가장 쾌적하고 불편함이 없던 것이 이러한 승객들의 경험을 반영했기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 간의 불편한 눈 마주침이 없어 불필요하게 스마트 폰을 볼 이유가 없었습니다.
출퇴근 시간에는 우리나라 지하철처럼 사람이 많았지만, 입구 근처에 있는 Branching pole 덕분에 중심을 잡기 위해 온몸에 힘을 주지 않아도 됐습니다.

노선마다 달랐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좌석이 2개씩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옆 사람의 몸이 한쪽만 닿아 불쾌함이 덜할 수 있었습니다.
공간에 대한 편안함을 느끼게 되니 외부 환경에 대해 예민하지 않게 반응할 수 있었고 더불어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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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타이페이의 MRT 내부[출처. http://studymandarinintaipei.blogspot.kr/2013/07/transportation-in-taipei-riding-taipei.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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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철도 내부[출처. http://blog.ohmynews.com/post9/tag/%EC%9D%B8%EC%B2%9C%EA%B3%B 5%ED%95%AD%EC%B2%A0%EB%8F%84

뉴욕의 수정된 레이아웃과 대만의 MRT만큼은 아니지만, 가장 최근에 생긴 인천 공항 철도는 출입문 쪽에 있는 좌석에 투명 칸막이를 설치함으로써 앉아 있는 승객과 몸이 닿지 않아도 기댈 수 있도록 했습니다.
기존의 지하철 형태를 유지를 하지만, 작은 변화를 통해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경험의 변화는 크게 와 닿았습니다.

결국, 지하철에서의 불쾌함은 사람보다는 공간으로부터의 시작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아무리 공간이 넓더라도 문제가 있는 사람 옆에서는 늘 힘들겠지만요. ^^

공간은 사람들의 행동과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출퇴근길, 지친 몸을 위안받을 수 있는 지하철 공간을 꿈꾸는 것은 무리일까요?

– UX1 컨설팅 그룹 김소연

 

[출처]

고석승 (2013년 12월 7일). 166cm vs 172cm…지하철 좌석 기준, 40년째 그대로. Retrieve from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0390984
범상규 (2014년 1월 10일). 공간 심리학. Retrieve from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99&contents_id=46453
여홍규 (2000년 9월 23일). 지하철 좌석 너무 비좁아 불편. Retrieve from http://imnews.imbc.com //20dbnews/history/2000/1868307_19530.html
Edward T. Hall (1966). The hidden dimension. Garden City, N.Y.: Doubleday.
Keith Barry (April. 16th, 2014). The ideal subway seating arrangement? No middle seats. Retrieve from http://www.wired.com/2013/04/rethinking-subway-seating/

* 메인이미지 출처.

2 Comments

  1. 백두섭 2016년 03월 31일 at 3:20 오후 - Reply

    ux디자이너이자 지하철을 (한때) 많이 애용하던 사용자로써 무척 흥미로운 글 이었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마운틴뷰/산호세를 가로지르는 칼트레인역시 다양한 좌석의 배치를 사용하고 있는데요, 의외로 불편한 점이 여전히 생기더라구요. 예를 들면… 앉을 자리가 없어서, 다른 칸으로 갔는데, 예상했던 배치가 아닌 새로운 배치로 순간 ‘멈칫’ 하는거죠. 즉 한국의 지하철은 출입구 까지의 동선만 다를 뿐 동일한 구조로 되어있기때문에, 이러한 익숙한 구조에서 오는 편안함이 앉을 자리를 찾으려는 과정에서는 분명히 장점으로 작용하리라고 생각이 드네요.

    PS: 그리고 22번 자리에 앉으면, 25번에 앉은 사람에게 뭔가 나의 측면을 내어준다는 불안감도 있을것 같은데요? :)

  2. 김소연 2016년 04월 08일 at 9:29 오전 - Reply

    안녕하세요? 백두섭님
    저의 글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두가지로 나눠서 답변드리겠습니다.

    1. 각 칸마다 다른 좌석 배치
    우선 각 칸마다 다른 좌석 배치를 한 기차가 있다는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저는 각 칸마다의 좌석배치를 달리해야한다는 주장은 아니었습니다. 각 칸의 배치는 모두 같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좌석배치가 모두 다르다면 좌석을 찾아 앉을때 두가지 이유로 어려움을 겪을것같습니다.
    첫째 익숙하지않아서, 둘째 모든 좌석의 경험이 없기에 어느 좌석에 앉아야 편한지 모른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 이유들은 러쉬아워가 아닌 시간이 전제해야할 것같습니다.
    그리고 지하철이 통근용인지 일시적으로 이용하는 관광용인지에 따라 느끼는 익숙성은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2. 측면을 내주는 좌석
    이 좌석에 불편함을 느낄수 있는 가장 주요한 요인은 정면을 바라본 좌석과 25번좌석과의 거리라고 생각합니다.
    에드워드 홀은 개인의 영역을 밀접한 거리, 개인적 거리, 사회적 거리, 공적 거리로 나누었습니다.
    따라서 사회적 거리란 공식적인 상호작용 상황에서 유지되는 거리영역으로 120~360cm 정도의 거리라고 하고, 공적 거리는 무대위의 공연자와 관객간의 유지되는 거리와 같이 360cm 정도 되는 거리를 말한다고 합니다.
    홀이 주장한대로 개인 영역의 거리를 보완하다면 22번 자리에 앉은 사람의 불편함이 덜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답변이 만족스러우셨는지 모르겠습니다.질문을 해주신덕분에 더 심도있게 생각할수 있었습니다.
    다음 글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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