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철학자 듀이를 만나다’

‘잡스, 철학자 듀이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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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 철학자 듀이를 만나다’는 <경험디자인>의 부제입니다. 디자이너와 경험철학의 대표 인물을 인용하여 책에서 다루는 경험디자인이 디자인과 인문학의 경계에서 형성된 통섭적 가치임을 함의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서론부터 존 듀이의 경험철학을 언급합니다.

존 듀이는 그의 대표적인 저서 ‘경험으로서의 예술(Art as Experience)’에서 그는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느끼는 작품도 결국 우리 일상에서 비롯된 경험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언급하며, 인간은 평생을 경험을 통해 배우고 그 안에서 사고하고, 상상하며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저자 또한 이 부분을 짚어 경험 중에서도 참된 경험인 ‘진정한 경험’이야말로 경험 디자이너가 추구해야 할 가치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경험은 일상과 구별된 ‘목적’을 지니고 있으며, 경험의 시작과 끝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비일상적인 조각이며 각 순간들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개개인의 삶을 충만하게 성장시키는 요소이며, 동시에 가치 있는 경험을 만들기 위한 단서가 됩니다.

 

경험 속에서 단서를 찾다

“마가렛 킨의 작업은 분명 예술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대중의 사랑을 받을 리 없으니까.”
1960년대 미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화가 마가렛 킨을 두고 앤디 워홀이 남긴 말입니다.
당대 유행하던 화풍과 대비된 그녀의 작품들은 평론가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림을 화랑에서 판매하던 것은 본인이 아닌 그의 남편이었는데, 그는 수익성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화랑에 들어온 사람에 비해 팔리는 그림의 수가 현저히 부족했던 것이죠.

어느 날 그는 그림에 관심을 보이는 대중이 값비싼 그림을 구매하기에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림을 감상하되, 구매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이후 화랑을 나가는 길에 설치된 부스에서 포스터를 팔기 시작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값비싼 그림은 못 팔아도 경험의 조각은 팔 수 있었던 것이죠!
그는 사용자 경험에 대한 관찰을 통해 내면적 욕구를 발견했고, 이를 전략적 사고와 접목시켜 효과적인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경험디자인_02

출처:영화 ‘빅아이즈’

 

오늘날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과정도 이와 유사해졌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팟을 만들며 관심 가진 것은 단순히 음악을 재생하는 기계가 아닌 ‘언제 어디서나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싶다’는 인간 본연의 욕구였습니다.
이를 분석하기 위해 다양한 인문학적 접근을 시도했고, 발견한 ‘인사이트’를 부유하는 개념으로 방치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경험적 요인을 실질적으로 담고 있는 구체적인 디자인을 통해 ‘진정한 경험’을 제공하는 mp3 플레이어로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Steve-Jobs-With-First-iPod_extremetech

출처. Steve Jobs With First iPod, extremetech

 

경험을 재단하는 도구들

저자는 책의 절반에 해당하는 분량을 일상 속 경험을 분석하는 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개념적이고 모호한 경험의 총체성을 말하는 것이 아닌 본인이 20년 간 경험한 사례를 바탕으로 경험에 대한 분석이 연구소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서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 줍니다.

최근 CGV의 4DX관에서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를 감상했습니다.
이전에 일반관에서 관람했던 영화지만, 4DX 이용객의 평가가 유난히 좋았던 것이 신기해서 궁금증이 생기더군요.
결과는 기대 이상으로 유쾌한 영화적 체험이었습니다.

단적인 예로 극 중 인물이 구토하는 장면이 있는데, 일반관에서 관람할 당시에 이 장면에서 아무런 반응도 없었습니다.
반면에 4DX관에선 구토와 동시에 관객의 얼굴에 물을 분사하는 위트를 발휘합니다.
이로 인해 객석에서 가장 호탕한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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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CGV

너무나도 다른 두번의 경험에서 저는 경험을 구성하는 큰 축 중 하나인 감각적 경험을 연상할 수 있었습니다.
보편적인 영화감상은 시청각을 통해 구성되는 것에 비해 4DX관은 문자 그대로 4D eXperience를 구현하기 위해 의자도 덜컹거리고, 천장에서 번쩍 빛이 들어오기도 합니다.
극 중 인물의 상황과 객석에서 관객들이 받게 되는 효과를 연계시킴으로써 실재감을 높이고 영화에 대한 몰입도를 상승시키는 효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물론 장면 속 인물의 토사물이 관객의 얼굴로 분사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장면 이전까지 관람객에게 쌓인 실재감으로 인해 물과 토사물이 직관적인 연결점을 지니게 되었고 객석에서 강한 에너지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할 수 있던 것이죠.
이는 4DX관에서의 독특한 영화적 체험을 구성하는 ‘진정한 경험’의 사례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다시 한 번 워홀로 돌아가 이야기를 풀어보자면, 국세청으로부터 탈세 의혹을 샀던 그는 자신의 대필 작가에게 아침마다 전날 지출 사항을 전화로 이야기했습니다. 작가는 그의 지출 내역을 정리하고자 했습니다.
워홀은 전화통화 하는 것 자체를 즐기기 시작했고 지출 내역을 넘어 날마다 일기와 감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1987년 의료사고로 죽음에 이르기까지 1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수다를 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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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앤디 워홀, 위키디피아

대필 작가 팻 헤켓은 이를 녹음하여 일지 형식으로 정리했습니다.
훗날 이 기록물은 ‘앤디 워홀 일기(The Andy Warhol’s Diaries)’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생전 워홀과 팻 헤켓은 이것을 일종의 가계부 겸 신변잡기 정도의 수다로 여겼고, 실제로 출간된 책도 그의 시시콜콜한 일상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시금 살펴보면, 에이즈 광풍이 불던 80년대를 살았던 동성애자인 앤디 워홀에게 “음, 걱정스럽다. 내가 아무것도 안해도 ‘게이의 암’에 걸릴 수 있다.”, “뉴스는 온통 록 허드슨이 AIDS에 걸렸다는 소식으로 도배되었다. 이제 그가 동성애자였던 사실을 믿는 것 같은데, 예전에는 그 얘기를 아무도 믿지 않았다.”와 같은 고백을 하기도 하는데, 이는 동시대를 살았던 동성애자의 공포를 엿볼 수 있는 맥락이기도 합니다.

판단적 경험의 측면에서 보자면, 초기 그들의 통화는 기능(가계부)적 요소와 외부적 상황(탈세 의혹)이 맞물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워홀의 취미나 마찬가지였던 전화통화는 점차 유희적 요소를 가미한 사용자 중심의 경험으로 변화했다는 점에서 특이한 사례로 보여집니다. 또한 당시의 시대 상황(에이즈에 대한 공포)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경험이 가지고 있는 개인과 환경의 상호작용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워홀의 일화를 통해 살펴봤듯이 저자가 제시하는 인문학적 도구를 이용하면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타인의 경험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간을 위한 디자인, 인간에게서 답을 찾다

저자의 20년 간의 경험이 축적된 ‘경험디자인’은 두께 만큼이나 고민의 흔적이 묻어난 책이었습니다.
불확실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디자인의 방향성을 설정하기 위해 인간을 이해하고, 인문학적 토대를 갖추는 것은 디자이너 뿐만 아니라 ‘기업의 생존방식’으로까지 변모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급격한 변화 속에서 미래를 선점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문학을 꼽았습니다.
그는 인문학이 수천년 간 축적된 인간의 생각을 바탕으로 정립된 학문이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과 행동 양상을 이해하고, 나아가 인간의 내면적 욕구를 발견할 수 있는 도구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경험은 단순히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러 가지 측면을 내포하고 있는 가능성이죠.
최근 IoT에 0차 산업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는 새로운 디바이스를 개발하는 것을 넘어 일상 속에서 빈번히 사용되던 것들이 인터넷과 결합하여 스스로 사고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단적인 예로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시 본이라는 도시에서는 주차장, 가로등, 쓰레기통과 같은 사물들이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일정량 이상 가득 차면 미화원에게 알림을 보내는 쓰레기통을 비롯해 당장 주차 가능한 장소를 안내하는 주차장까지, 일상 속의 ‘토이 스토리’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영화 ‘토이 스토리’의 성공에는 세계 최초의 3D 애니메이션이라는 기술력 너머 관객의 경험을 빌려 완성한 상상력이 있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일상 속 가능성을 살펴보고 그것에 상상력을 더한다면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요?

‘정답은 언제나 가까운 곳에 있다’는 뻔하지만 명확한 교훈처럼 우리가 만들어야 할 ‘진정한 경험을 제공하는 제품’의 실마리는 다시금 인간 그리고 인간의 경험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 가치디자인그룹 고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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