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박물관

건축으로 보는 경험디자인, ‘리베스킨트의 유대인 박물관을 거닐다’

지난 10여년간 디자인 산업의 화두는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UX)이었습니다. 사용자 경험은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 원리에 기반하고 있어 인간공학, HCI(Human-Computer Interaction), 정보 아키텍처, UI, 사용성 공학 분야와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이 개념은 이제는 컴퓨터 제품뿐만 아니라 산업을 통해 제공되는 서비스, 상품, 프로세스, 사회와 문화에 이르기까지 널리 응용되고 있죠.

산업에서 경험디자인 중심으로 변화와 주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애플이 선보인 ‘아이폰’이 나온 후부터입니다. 혁신적 디자인과 사용자 경험은 ‘기능’에서 ‘사람’ 중심으로 디자인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꿔놓았고, 이후 많은 기업들이 사용자 경험 중심의 혁신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다이슨의 날개 없는 선풍기, 사용자와 상호작용을 최적화한 Wii의 성공 사례 등 작지만 의미 있는 경험디자인이 상품의 가치를 극대화하며, 그것이 시장에서 성공하는 단서라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그 동안 사용자 경험은 크거나 작게나마 제품, HCI, 인간공학, 건축, 예술, 브랜드 등 다양한 학문과 산업에서 주창하고 성장해 왔습니다. 특히 HCI 분야에서의 사용자 경험은 인터페이스, 인터랙션 이후 사용된 개념이며, 아직도 많은 사용자 경험 원리가 컴퓨터 공학 분야의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개발 분야에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사용자 경험은 다학제/다분야의 총체적 시각에서 접근해야 하는 핵심 원리를 바탕으로 다가서야 합니다. 특정 한 분야의 편향된 조명을 벗어나, 다분야에서 경험 디자인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건축학도였던 필자는 인간의 삶을 담아내는 그릇인 ‘건축공간’에서의 경험디자인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경험은 인간의 외적, 내적 작용으로써 그 개념적 논의는 주로 철학 분야의 주요한 연구 대상입니다.
경험에 관하여 많은 사상가들이 탐구했지만 가장 체계적이고 현대적인 시각으로 평가 받는 존 듀이 중심의 ‘현대 경험이론’에서 보면, 인간의 경험은 크게 감성적, 관계적, 판단적으로 분리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세 가지 분류체계 중 건축공간에서의 감성적 체험에 대해 먼저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존 듀이 자세히 알아보기 (엔하위키 미러) 

인간의 경험 중 감성적 체험을 가장 잘 느끼게 해주는 대표적인 건축물로 독일 베를린의 유대인 박물관(Jewish Museum Berlin Berlin, Germany Completed 1999 )이 있습니다.
유대인 박물관을 설계한 건축가는 해체주의 거장,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입니다. 다니엘 리베스킨트는 1946년 폴란드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을 간 유대인입니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 2차 세계대전 중에 아우슈비프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학살당한 유대인들에 대한 추모의 성격을 강하게 가지는 작품들을 볼 수 있는데,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이 그의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그는 비극으로 점철된 유대인의 역사를 가장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단어를 ‘홀로코스트’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처참한 살육의 침략과 억압에 짓밟힌 기억과 분노, 연민 같은 유대인의 정서를 표현하는 데 있어 최적의 ‘프로그램’인 ‘박물관’을 통해 이를 표출해 냈습니다. (건축에서의 ‘프로그램’이란, 기능적 목록을 뜻하며 세부 조건은 인간의 활동을 고려한 행위 구성 목록과 사회적 요구에 따른 시설로서 사회와 건축을 연결하는 역할을 뜻합니다.)

감성은 외부의 물리적인 자극에 의한 감각이나 지각을 통해 인간의 내부에 일어나는 미적이고 심리적인 체험입니다. 예를 들어, 수려한 미술품을 지각하고 아름다움을 느낀다거나, 맛있는 냄새라는 외부의 자극을 받아 만족감을 느끼는 것 모두 감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감성을 건축공간에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간적 특성에 따라 기준을 세워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필자는 건축공간의 물리적인 특성인 구조적 조건, 공간에서 체험을 위한 행동적 조건, 시지각적 인지를 위한 표현적 조건이라는 세 가지 하위 요소를 통해 유대인 박물관이 사람의 감성적 경험을 어떻게 이끌어 내는지에 대해 설명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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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유대인 박물관 조감도 (http://www.jmberlin.de/)

1. 구조적 조건

리베스킨트는 베를린에서 사려져간 유대인의 흔적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구현을 위해 지도에서 베를린 시내에 위치한 유명한 유대인 작가, 작곡가, 예술가, 과학자 및 시인들의 거주지를 선으로 연결했습니다. 그 선들은 유대인의 상징인 다윗별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매트릭스를 만들었고, 이는 평면에서 9번의 굽이치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많은 파편으로 절단된 비가시적 직선과 연속적으로 비틀린 가시적 선들이 결합된 2개의 선으로 박물관을 구성했습니다.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의 건축개념 ‘between the lines’는 일종의 건축적 시나리오로 작용하여 박물관의 동선, 공간 구성에 적용되었습니다.
각 3개의 축은 각각 서로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첫 번째 축은 ‘연속의 계단’으로 역사의 연속을 강조하면서 박물관의 전시공간으로 연결되고, 두 번째 축은 베를린을 떠나야만 했던 사람들을 추모하는 ‘호프만 가든’과 연결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대학살을 상징하는 막다른 골목인 ‘홀로코스트 보이드’로 이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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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유대인 박물관의 3개의 축

건축물에는 표면에 들어난 출입구가 없습니다.
들어가기 위해서는 옆에 바로크 양식의 옛 박물관 건물로 들어간 뒤 지하에 있는 통로를 통해 출입할 수 있습니다. 리베스킨트는 일부러 출입구를 지하에 숨겼다고 말합니다. 이는 두 개의 건물로 대변되는 두 가지 역사를 연결하는 고리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결코 풀 수 없는 매듭으로 묶여 있으며, 베를린의 기저에 영원토록 숨겨둔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 출입구를 통해 들어오면, 첫 번째 축인 ‘연속의 계단’이 역사의 연속을 강조하면서 박물관의 전시공간으로 안내합니다. 사선으로 기울어진 구조물들은 기본적으로 건축 구조에 적합한 형태라고 할 수 없지만, 형태의 전체적인 인상은 시각적 방향성에 집중하게 합니다. 중첩되어 보이는 선들은 시간과 공간의 관계를 해체하려는 의도를 나타냅니다.
리베스킨트는 시공간을 해체하려는 의도를 통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동선안에서 비극적인 과거와 반성하는 현재, 그리고 밝은 미래를 동시에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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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3] 연속의 계단 (출처. forocoches.com)

2. 행동적 조건

두 번째 축을 따라 외부에 정원으로 나가면 베를린을 떠나야만 했던 사람들을 추모하는 ‘호프만 가든’과 연결됩니다.
가로 약 1.5m, 세로 약 7m 가량의 49개의 기둥이 서로 0.9m 가량 떨어져 설치되어 있으며, 바닥은 12도정도 기울어져 있습니다. 콘크리트 기둥들은 망명 중 죽어간 유대인의 묘비를 연상시키며, 박물관의 금속성 외벽과 이질적인 재질로 서로 다른 차원의 공간임을 나타내는 절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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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호프만 가든 전경 (출처. gvu.lt)

기둥들 사이 울퉁불퉁하고 기울여진 바닥을 걸을 때, 항상 지각해 오던 중력의 의미는 사리지고 이동의 불편함과 함께 공간지각에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기둥의 상단에는 도토리 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나무의 위를 보면 어수선하게 헝클어진 수풀의 모습이 눈에 띕니다. 이러한 체험은 유대인이 박해를 받으며 이주를 위해 사막을 건너는 동안 유일한 은신처이자 망명을 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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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호프만 가든 바닥면과 상단의 모습 (출처. panoramio.com)

 

박물관의 내부 공간은 폐쇄적이면서 흡사 미로와 같이 철저히 고립되어 관람객에게 공간 선택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미로 속에서 처음부터 정해진 목표를 향해 극도로 복잡한 공간 속을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도록 억압을 받습니다. 끝없이 흩어지는 좁다란 복도는 공간지각을 흐트러뜨려 어디쯤인지 가늠할 수 없어 길을 잃을 것 같은 두려움도 선사합니다.

보통의 박물관은 전시 내용을 효율적으로 관람하기 위해 동선의 흐름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고려하여 반영하지만, 이 곳은 의도적으로 복잡한 구획을 짜고 동선 자체를 혼란스럽게 만들어 유대인이 처했던 불확정적 상황을 공간적 시나리오로 경험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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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박물관 내부 통로 (출처. saatchigallery.com)

3. 표현적 조건

유대인 박물관의 외관에 보이는 아연도금의 금속성 외벽 패널 파사드에서 길게 도려진 틈은 무자비하게 흉기로 난도질한 것처럼 보입니다. 단순한 선처럼 보이지만 날카로운 흔적들은 나치에 의한 학살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리베스킨트의 건축적 언어입니다. 건축물에 ‘상처’를 내는 것으로 수십 년전 자행된 유대인 학살을 외관에서부터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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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유대인 박물관 외관 (출처. monicaeffendy85.wix.com)

세 번째 축을 따라 홀로코스트 축에 들어서게 되면 복도에 설치된 장에는 비참하게 학살당한 사람들이 지녔던 물건들이 추억과 함께 전시되어 있고 복도 끝에는 무거운 철문이 있습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오는 것이 홀로코스트 타워입니다. 묵직한 철문이 쿵 소리를 내며 닫히는 순간, 24m의 좁고 사방이 막혀 있는 공간 속에서 절대 어둠을 경험하게 됩니다. 조명도 난방도 없이 어둡고 한기가 느껴지는 침묵만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통로 끝 상층부에 작은 틈으로 빛이 관통하는데, 이는 절망적인 공포와 비틀린 역사에서 벗어나 꿈꾸는 한줄기 희망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빛은 건축공간을 구성하는 다른 요소들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는데, 물리적 측면에서뿐 아니라 심리적 측면에서도 인간에게 풍부한 경험을 제공한 요소입니다. 또한 특정한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전달하거나, 감정이나 힘을 나타나게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공간에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리베스킨트에게 빛은 단순한 조형성을 넘어서 의미적 측면(상징성, 심미성, 체험성)을 부여하고 있어 그는 이를 통해 홀로코스트 끝에 희망찬 미래를 보여주고 싶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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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 홀로코스트 보이드 (출처. jewrnalism.org)

내부에는 감성적 체험이 극대화되는 특징적인 공간적 장치가 있는데 바로 “공백의 기억(Memory of Void)”입니다. 바닥에는 이스라엘 현대미술가인 메나쉐 카디쉬만(Menashe Kadisgman)의 작품이 있습니다. 희생된 유대인 얼굴의 형상을 한 원형의 강철 조각은 각기 다른 형태의 얼굴을 나타내며 바닥에 불규칙하게 깔려 있습니다. 관람객이 밟고 지나갈 때 강철 조각들의 마찰음은 마치 유대인들이 학살당할 때의 비명소리처럼 좁고 깊은 공간에서 공명하며 울려퍼집니다. 공간을 지나게 되면 이 닫힌 공간에서 모든 방문자는 고요한 적막과 더불어 과거의 회상에 잠시 빠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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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9] 유대인을 상징하는 철편 얼굴 (출처. architectureoflife.net)

www.panoramio.com (2)

[그림 10] 공백의 기억(Memory of Void,  출처. panoramio.com)

박물관 내부를 보다보면 구조적, 공간적으로 비어 있는 곳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는 리베스킨트가 건축물의 기본 개념으로 택한 공백(void)으로 단절된 역사, 베를린에서 유대인이 떠난 자리, 재가 돼 버린 인간성 등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모든 종류의 공백이 건축공간 곳곳에서 실재감으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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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 공백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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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2] 벽면의 VOID

지금까지 간단히 살펴본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은 비극적인 역사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치들로 관람객에게 감정을 전달하는 건축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평소 겪어온 편리하고 안락한 공간과 달리 기울여진 구조, 동선을 파악하기 어려운 복도, 냉기가 가득하고 스산한 장소 등 불균형적, 비인식적인 공간으로 하여금 과거 유대인들이 느꼈을 삶의 공포와 불확실성을 전달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다니엘 리베스킨트의 ‘기억하기’란 깊이 있는 텍스트가 공간에서 실재감 있는 디자인으로 표출되어, 적막함 속에서 감정이 상기되고 기억으로 남아 경험을 형성하게 합니다.

4. 글을 마치며

IT 분야에서 화두인 사용자 경험이 본연의 의미와 함께 특정 방법론을 중요시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건축공간에서의 경험디자인은 물리적 특성도 접근 방법도 매우 다릅니다.
건축공간은 장소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해석, 주체의 움직임과 함께 만지고 보고 들을 수 있는 구조와 디자인, 사회 보편적으로 형성된 기능적 기대, 건축가의 관념에 의한 언어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체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건축공간은 경험의 주체인 인간의 삶과 궤적을 깊이 있게 그려내는 동시에 적층된 시간의 켜를 재구성하여 물리적으로 디자인을 제공합니다. 실재감 높은 디자인은 체험의 시작과 끝을 통해 총체적인 경험으로 만들어 집니다. 이렇듯 건축공간은 삶에 필수적인 요소로서 일상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풍요롭게 하고 자연스럽게 회상할 수 있는 진정한 경험을 위한 디자인을 선사합니다.

지금까지 간단히 언급한 유대인 박물관에 대한 설명은 사실 극히 일부분이지만, 대표적인 공간들을 통해 건축공간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감성적 차원을 소개하고자 했습니다.
이후 기회가 되는대로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건축공간에서의 감성적 측면 이외에 관계적, 판단적 차원의 소개들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 UX1 컨설팅 그룹 곽재영 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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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omments, add your’s.

김대관

글 너무 잘봤습니다! 이번에 유대인 박물관을 보고 더 알아보고 싶어서 많은 글을 보는데, 그 중 단연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blogadmin

아.. 너무 감사합니다. ^^
도움이 되셨다니 기쁩니다~

지슈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건축학도로서, 우리나라 일제강점기에 대한 박물관을 만드려고 하는데 좋은 참고자료가 되었습니다!!

blogadmin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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