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 관점에서의 ‘마쓰다 스타디움 히로시마’ 2편 – 끊김없는 경험과 디자인 아이덴티티

UX 관점에서의 ‘마쓰다 스타디움 히로시마’ 2편 – 끊김없는 경험과 디자인 아이덴티티

UX 관점에서의 ‘마쓰다 스타디움 히로시마’ 2편 – 끊김없는 경험과 디자인 아이덴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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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연말, 전 세계 야구팬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미국 메이저리그의 최고 명문구단 뉴욕 양키스에서 활약하고 있던 일본인 투수 ‘구로다 히로키’ 선수가 8년만의 일본 복귀 선언을 한 것인데요. 무려 196억원에 이르는 연봉 제의도 마다하고 자신을 키워준 구단과 팬들에 대한 의리(!)를 택한 그는 올 시즌부터 다시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일원으로서 마쓰다 스타디움의 마운드에 오르게 되었습니다[1].

냉정한 프로세계에 낭만을 선사한 구로다 히로키 선수가 8년전까지 만년 하위팀의 에이스로서 굳건히 지켜냈던 (당시 홈 구장) 히로시마 시민 구장은 당시에도 이미 50년 가까이 사용되어온 탓에 재건축이 시급한 상황이었습니다. 낙후된 시설도 문제였지만 ‘시립 구장’이라는 명칭에서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이 경기장에서는 ‘도요 카프’ 팀만의 아이덴티티를 느낄 수 없다는 것 또한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2].

이러한 배경 속에서 건립이 추진된 ‘마쓰다 스타디움’은 당시 히로시마 역의 화물부지로 사용되던 곳에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서울로 치면 용산역 철도기지창 부지 위에 야구장을 지은 것입니다.
만약 용산에 야구장이라니…ㄷㄷㄷ 애써 부러움을 억누르고 필자가 실제로 방문했던 마쓰다 스타디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쓰다 스타디움에 오는자 히로시마 팬이 될지어니!

노면 전차 외부, 노면 전차 내부, 카프 소년 맨홀 뚜껑, 로손 편의점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노면 전차 외부, 노면 전차 내부, 카프 소년 맨홀 뚜껑, 로손 편의점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히로시마 시내에서 마쓰다 스타디움으로 가기 위해서는 노면 전차를 타고 히로시마 역에 내려야 합니다. 고풍스런 낡은 19세기 느낌의 전차부터 사이버틱(?)한 미래형 전차까지 다양한 디자인의 전차가 다니는 히로시마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전차는 바로 도요 카프 로고와 컬러로 래핑된 전차입니다. 이 전차는 위 사진과 같이 외부는 물론 내부 디자인까지 모두 강렬한 컬러의 로고로 브랜딩이 되어 있어 마치 도요 카프 서포터즈 전용 전차를 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히로시마 역에 내려 경기장으로 가는 길목은 경기시작 1시간 전부터 보행자 전용도로로 바뀌면서 유니폼을 입은 야구팬들로 빨갛게 물듭니다. 거리 곳곳에 위치한 상점들 또한 도요 카프 로고로 브랜딩이 되어 야구팬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길바닥의 맨홀 뚜껑에도 도요 카프의 제1 마스코트 ‘카프 소년’이 새겨져 있습니다. 경기가 있는 날마다 이렇게 축제처럼 변신하는 거리를 거닐다 보면 저 멀리 붉은색 경기장, 마쓰다 스타디움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일본 프로야구 특유의 응원 방법으로 7회말 종료 후 각 구단별 컬러의 기다란 풍선을 날리는 럭키세븐 타임을 갖는다.

일본 프로야구 특유의 응원 방법으로 7회말 종료 후 각 구단별 컬러의 기다란 풍선을 날리는 럭키세븐 타임을 갖는다.

골목길에서 2층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붉은색 바닥의 슬로프를 따라 경기장 안에 들어서면 연두색 그라운드와 대비되는 강렬한 붉은색 의자들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막간의 시간을 이용해 방문한 기념품 샵에는 다이소(!)를 방불케 할 정도로 다양한 품목의 구단 상품들이 도요 카프의 로고를 입고 팬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색무취의 시립 운동장이었던 ‘히로시마 시민 구장’과 달리 마쓰다 스타디움에서는 관객이 보고 경험하는 모든 것에 도요 카프의 컬러와 로고로 브랜딩이 되어 이 곳이 오직 ‘히로시마 도요 카프’만을 위한 공간으로 탄생하였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경기장 내 음식점에서 주문한 야끼소바가 브랜딩된 용기에 담겨 나오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일본 야구장에서 먹는 야끼소바의 맛이란!

일본 야구장에서 먹는 야끼소바의 맛이란!

경기장을 찾은 관객들은 그라운드 위에서 펼쳐지는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와 승리를 향한 열정을 바라보며 팀을 응원하게 되고 이를 통해 팀에 대한 애정을 느끼게 됩니다. ‘프로는 오직 결과로 말한다’라는 말처럼 프로팀이라면 무엇보다 팬들을 열광시킬 만큼 좋은 성적을 갖추는 것이 우선일 것입니다. 하지만 스포츠라는 분야도 결국 하나의 콘텐츠라고 생각한다면 이를 향유하는 소비자에게 성적 이상의 경험과 만족을 선사하는 일 또한 중요합니다.

마쓰다 스타디움에 들어선 관객들은 경기장 안팎을 가득 채우고 있는 도요 카프의 디자인을 보며 팀이 표출하고자 하는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것도 반복적으로 말이죠.
이를 통해 (경쟁팀 팬이 아니라면 ^^;;) 관객 자신도 도요 카프 팀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을 가지게 되며 더 나아가는 그 팀에 대한 자부심 마저 느낄지 모릅니다. 20년 넘게 이글스 팬인 필자가 마쓰다 스타디움에 방문하고 나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매료된 것처럼 말이죠.

경기장에 오는 순간 끊김없이 야구에 빠져든다.

1루측 내야석 뒤편의 콘코스의 모습으로 통로라기 보다는 아케이드 거리에 가깝다.

1루측 내야석 뒤편의 콘코스의 모습으로 통로라기 보다는 아케이드 거리에 가깝다.

대부분의 경기가 2~3시간 동안 진행되는 야구 특성상 경기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중간에 화장실도 가야 하고 매점에 가기도 합니다. 때로는 어이 없는 플레이에 자리를 박차고 잠시 일어나기도 합니다.
도요 카프의 강력한 디자인 정책(?) 덕분에 경기장 밖 노면전차를 탑승했을 때부터 점점 고조되었던 긴장감이 정작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사르르 녹아 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마쓰다 스타디움에는 이처럼 한껏 달아오른 관객들로 하여금 심리적인 이탈없이 계속 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강력한 무기가 있습니다. 바로 그것은 콘코스(concourse) 입니다.

사전적인 의미로 역이나 공항 등 중앙에 위치한 통로를 겸한 광장을 뜻하는 ‘콘코스’는 경기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끊김없는(seamless) 경험을 제공하는 필수 요소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마쓰다 스타디움에도 이러한 콘코스(통로)가 1층과 3층 사이에 광장처럼 넓게 위치하여 경기장 전체를 휘감고 있습니다. 때문에 관객이 경기장 내부에서 이동을 하거나 편의시설 이용하는 동안에도 그라운드를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 되어 있습니다.

마쓰다 스타디움의 단면도. ‘コンコース’라고 쓰여 있는 부분이 콘코스 통로다. (좌-1루측 내야, 우- 3루측 외야) 출처 : 히로시마 도요 카프 공식 홈페이지

마쓰다 스타디움의 단면도. ‘コンコース’라고 쓰여 있는 부분이 콘코스 통로다. (좌-1루측 내야, 우- 3루측 외야)
출처 : 히로시마 도요 카프 공식 홈페이지

이러한 콘코스의 진가는 단순히 어느 위치에서든 그라운드를 바라볼 수 있다는 데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라운드를 향해 오픈된 콘코스는 관중석과 편의시설 사이에 위치한 연결고리 역할을 하면서 그라운드 위의 열기를 관중석을 넘어 통로와 편의시설 앞까지 끌고 오게 됩니다. 마치 경기장 구석구석까지 뜨거운 열기가 존재하는 하나의 공연장이 되는 것입니다. 덕분에 마쓰다 스타디움의 관중석에서 경기를 관람하고 있던 관객은 매점을 다녀오는 동안에도 그라운드의 열기 속에서 벗어나지 않고 끊김없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비록 경기장의 뜨거운 열기를 제대로 느낄 수는 없지만 아래 스트리트뷰를 통해 콘코스의 역할을 좀 더 현장감 있게 경험할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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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링크를 클릭하시면 경기장 내부를 둘러 보실 수 있습니다.

야구 관람객이 치열하게 진행 중인 경기에서 눈을 떼지 않고 끊김없이 관전하려는 것처럼 웹 서비스 사용자 또한 끊김없이 원하는 태스크를 수행하고 싶어합니다[3].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사무실이나 집, 심지어 이동 중에도 연속적으로 업무를 가능하게 하는 클라우드 오피스도 이러한 사용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서비스라고 할 수 있는데요. (흠…^^;;;)
클라우드 오피스 사용자와 같은 물리적인 위치이동 뿐만 아니라 서비스 내부의 화면이동 시에도 심리적인 단절을 일으키지 않고 계속해서 몰입(flow)할 수 있도록 방해요소 없는 UI, 인터랙션을 구성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입니다.
뿐만 아니라 운신의 폭이 좁은 모바일 디바이스에서는 마쓰다 스타디움의 구조적인 근간을 이루는 ‘콘코스’와 같은 영역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UX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고민이 필요하게 됩니다.

마쓰다 스타디움의 야경

마쓰다 스타디움의 야경

작년 개장을 한 광주 기아 챔피언스 필드와 올 시즌 첫 선을 보이게 될 수원 kt 위즈파크, 그리고 내년 개장 예정인 대구 신구장(가칭)까지. 최근 몇 년간 국내 야구팬들을 설레게 하는 신축 경기장들의 개장 소식이 속속 들려오고 있는데요. 야구를 사랑하는 팬으로서 참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실적인 부분을 제쳐두고 꿈에서나 나올 법한 야구장을 척척 만들어 낼 수는 없겠지만, 야구장을 찾은 팬들에게 최고의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계속 이어진다면 언젠가는 국내 프로야구에도 보다 많은 야구장들이 ‘팬 친화적인’ 모습으로 변해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해봅니다.

UX 관점에서의 ‘마쓰다 스타디움 히로시마’ 1편 – 리서치와 건설 계획

 

– 가치 UX 그룹 최길수

 

참고 :[1]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에이스로 활약해오던 구로다 히로키 선수가 2006년 FA 자격을 얻게 되면서 시즌 종료 후 그가 만년 하위팀이자 가난한 시민 구단인 소속팀을 떠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 해 마지막 등판날, 히로시마 시민 구장을 가득 메운 팬들은 그를 위해 등번호 15번이 적힌 빨간색 카드와 대형 플랜 카드를 꺼내 들었고 이에 감동한 구로다 히로키는 결국 히로시마에 남게 되었다. 히로시마에서 1년을 더 던지게 된 그는 언젠가 다시 돌아겠다는 말을 남긴 채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게 되었는데 올 시즌 일본에 전격 복귀하면서 8년만에 그 약속을 지키게 된 것이다. 2006 시즌 최종전 당시 대형플랜카드에는 이런 메시지가 쓰여 있었다.
“우리는 함께 싸웠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미래에 빛나는 그날까지. 그대가 눈물을 흘린다면 그 눈물이라도 되어 주겠다. 카프의 에이스 구로다 히로키”[2] 위키피디아 (広島市民球場, 日本語)[3] 박지수ㆍ김헌,『UX 디자인 7가지 비밀』,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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