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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호돌이 아빠’ 김현을 통해 본 우리나라 브랜딩의 역사와 현재

금주는 아시아 기획편 두 번째로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김현을 소개하겠습니다.
역시나 김현 하면 떠오르는 디자인은 88서울올림픽 상징물에 쓰인 상모 쓴 호랑이, 호돌이가 아닐까 합니다.
호돌이 아빠 김현의 대표 디자인을 통해 우리나라 브랜딩의 역사와 지금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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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에는 ‘김현 디자인 40년전’이 열렸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례적으로 열린 개인 디자이너의 회고전으로서 김현의 디자인은 곧 우리나라 산업 디자인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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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김현은 호돌이 아빠로 더 유명합니다. 88올림픽 마스코트인 ‘호돌이’를 디자인한 사람이 바로 김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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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마스코트 호돌이>

호돌이는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둘리 다음으로 유명한 캐릭터가 아닐까요?
1983년, 지명공모를 통해 88서울올림픽 공식 마스코트로 탄생한 호돌이는 26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또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한국디자인입니다.
88서울올림픽과 2008베이징올림픽 사이의 20년을 시간적 배경으로 한 영화 <킹콩을 들다>에도 호돌이 복장을 하고 응원하는 사람의 모습이 잠시 클로즈업되어 보는 이의 향수를 자극했습니다.
1981년 독일 바덴바덴에서 올림픽 유치가 확정된 후 서울올림픽위원회는 그 이듬해인 1982년에 88서울올림픽 상징물에 대한 현상공모를 시행했는데 이때 응모된 총 4,344장의 엽서 중 최고 득표를 한 것이 호랑이였습니다.
곧이어 마스코트 디자인 지명공모가 이루어졌는데 그 결과 김현이 디자인한 상모 쓴 아기호랑이가 당선작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김현이 지명공모에 출품했던 마스코트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호돌이 모습 사이에는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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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공모 당선작 호돌이>

위의 캐릭터가 바로 김현이 디자인해 지명 당선된 디자인입니다.
농악대 상모의 긴 끈으로 서울의 영문 첫 자인 ‘S’ 자 모양을 그리고 목에는 오륜 목걸이를 두른 것은 지명공모 당선작이나 이후 확정된 공식 마스코트나 마찬가지지만 동작이나 표정, 그리고 세부적인 표현 등에서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지명공모 당선작이 디자이너 김현의 개인 작품이라면 확정 발표된 마스코트는 공식(公式)이라는 용어의 사전적 정의 즉, ‘국가적 또는 사회적으로 인정된 공적인 방식’이라는 의미와 ‘틀에 박힌 형식이나 방식’이라는 두 가지 의미 모두에서 당대 한국사회의 통념과 집단 미의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디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 사회 정서상, 김현이 디자인한 수줍어하는 듯한 모습의 마스코트는 올림픽과 같은 대규모 국제 스포츠 행사에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수정하는 과정에서 원래 안이 갖고 있던 친근하고 생생하게 살아 있는 맛이 사라져 버린 것은 분명 아쉽습니다.
마스코트의 수정 과정에 대해 디자이너 김현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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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3월 중순부터 6월 중순까지 3개월 동안 작업을 해서 지명공모에 출품을 했고, 며칠 후 심사를 해서 당선 내정작이 되었는데 최종안으로 공표되기까지 수정 작업을 많이 했어요. 심사위원단에서 나온 이야기, 자문위원단에서 나온 이야기 등을 반영했는데 예를 들면 동물전문가들이 보았을 때 호랑이의 특징은 이러저러하니 이런 점을 고치는 게 좋겠다는 등의 이야기들이 나와서 수정작업을 했지요. 거의 5개월 동안 수정작업만 했어요. 눈을 조금만 더 키워라, 발을 어떻게 해라, 무늬가 어떻다, 귀가 어떻다… 제일 신경 썼던 것 중의 하나가 고양이하고 비슷해 보이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지요. 눈을 더 크게 하고, 귀를 더 크게 하고 손발을 더 크게 하고 꼬리를 더 굵게 하고… 이런 식의 세세한 수정을 굉장히 여러 번 반복했어요.
나중에 10월 말쯤 되니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에서 이 정도면 발표해도 되겠다고 해서 수정작업이 완료되고 11월 말에 엠블럼과 함께 언론에 정식으로 공표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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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과정을 통해 호돌이가 더 호랑이다워졌는지 모르겠지만 그래픽 표현상의 특징을 살펴보자면 공식 마스코트가 지명공모 당선작보다 더 단순하고 기하학적이며, 평면적으로 정리되었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표현 방식은 바로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의 한국 그래픽 디자인이 추구했던 조형미, 즉 ‘자와 컴퍼스로 그린 것이 손으로 자유롭게 그린 것보다 훨씬 더 조형적이며 디자인적’이라는 의식을 그대로 반영한 것입니다.

컴퓨터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자와 컴퍼스는 미술과 디자인을 구별하게 해주는 주요한 수단이었습니다.
디자인에 대한 사회적 이해가 지금처럼 널리 확산되기 전, 디자인계에서는 디자인을 순수미술과 최대한 분리함으로써 독립적인 위상과 역할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차이를 시각적으로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의 하나가 바로 자와 컴퍼스의 활용이었습니다.
자와 컴퍼스가 만들어내는 표현방식은 기하학적이고 구조적이며, 단순하고 추상적이고 또 평면적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1990년대, 자유분방한 포스트모던 스타일이 한국에 도래하기 이전까지 한국 디자인계를 풍미했던 양식적 특징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자와 컴퍼스를 사용한 표현 방식이 당시의 억압적이고 경직되어 있던 민주화 이전의 한국사회를 직간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넋두리 식으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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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호돌이라는 명칭은 공식 마스코트의 디자인이 확정 발표된 후 다시 이루어진 ‘애칭 현상공모’를 통해 정해졌습니다.
이 공모에는 총 6,117통의 엽서 응모에 2,295종의 이름이 등장했는데, 이 중에 호돌이가 396통으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아 1984년 4월에 ‘호돌이(Hodori)’라는 이름이 확정 발표되었습니다. 여성형 마스코트에는 호순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이후 호돌이와 호순이 마스코트는 기본형 외에 양궁, 승마 등 정식종목 23개와 시범종목인 배드민턴, 볼링, 장애인 휠체어 경기 등 올림픽 전 종목을 대상으로 한 응용형이 만들어졌고 이와 더불어 대회보조용 마스코트 9종류, 그림문자용 마스코트 19종류 등도 함께 개발되어 88서울올림픽 기간 동안 폭넓게 활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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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돌이를 디자인 한 디자이너 김현은 디자인파크라는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가 운영하는 디자인파크는 서울시 슬로건 ‘Hi Seoul’을 비롯해 BC카드, 서울시, 교보생명, 아이리버, EBS, 티머니, 한국도로공사 등 우리 눈에 익은 수많은 CI, BI를 만들어 왔습니다.
지금부터 그의 생각을 조금 더 깊이 있게 알아보기 위해 몇 가지 인터뷰 내용을 인용해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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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비즈 뉴스 인터뷰 중에서… 

지금까지 400여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김현에게 가장 애착이 가는 작업이 있느냐고 묻자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듯 모든 프로젝트가 소중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하지만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인상 깊은 프로젝트가 있긴 하다”고 말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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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원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맑고 깨끗한 자연의 이미지가 연상되지 않나요? 화학조미료의 대표처럼 여겨졌던 미원이
청정원으로 바꾼 후 승승장구했죠.”
1997년 미원은 청정원으로 BI를 변경했다.
국민소득이 올라가면서 소비자들이 ‘건강한 먹을거리’에 집중, 화학조미료 대신 천연조미료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소비자의 마음속에는 미원의 화학조미료 이미지가 강했기에 조미료 이미지를 탈피하면서 신뢰와 정직이라는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는 BI가 필요했다. 이에 디자인파크가 BI 작업에 참여, 화학조미료와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청정원으로 브랜드를 선정했다.
BI도 자연을 상징하는 듯한 이미지로 교체했다.
이에 힘입어 매출도 상승했다.
특히 청정원의 브랜드 콘셉트인 ‘가족을 위해 좋은 원료로 정성을 다한 신선하고 깨끗한 식품’을 강조, 청정원은 자연, 신선, 깨끗함이 돋보이는 이미지로 거듭났다.
이에 그는 “브랜드를 변경해 제품이 성공할 경우 함께 뿌듯하다”며 “이제 BI는 ‘보기 좋다’, ‘예쁘다’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그 회사가 성공을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걸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앙일보 인터뷰 중에서…

지갑 속 카드부터 청와대 상징물까지, 이 사람이 디자인한 이미지가 한국인과 더불어 산다.
교통카드 ‘티머니’, 서울시 슬로건 ‘Hi Seoul’도 이 사람 손에서 시각 이미지로 거듭났다.
디자이너 김현은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잠들 때까지 시선을 두는 곳곳에서 눈을 잡아 끄는 이미지를 창조했다.
기업이미지통합(CI)과 브랜드 아이덴티티(BI) 분야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는 바로 김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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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별명은 ‘호돌이 아빠’다. 김현이란 이름은 몰라도 1988년 서울올림픽 공식 마스코트인 ‘호돌이’는 누구나 안다.
메달을 목에 걸고 상모를 돌리며 동그란 눈을 반짝이는 호돌이는 디자이너 김현이 35살 때 공모에서 당선해 그의 대표작이 됐다.
대기업 디자인실에서 일하던 그는 호돌이의 탄생과 함께 ‘디자인 파크’라는 사무실을 내고 400건이 넘는 기업 디자인 작업을 해왔다.
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개막해 10일까지 이어지는 ‘김현 디자인 40년 전·디자인파크 25년 전·호랑이상품 제안전’은
디자인에 목숨을 걸었던 김현과 그의 작업실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인 잔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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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듯 밤샘을 하고 코 풀 듯 코피를 쏟으며 40년 외길을 걸어온 디자이너 김현은 디자인을 한마디로 ‘끝없는 투쟁’이라고 정의했다.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맡겨주는 의뢰인, 즉 클라이언트가 있어야 시작되는 일이죠. 디자인에 힘을 반쯤 쓴다면 나머지 반은 의뢰인과 싸우느라 지치죠. 오죽하면 제가 ‘난 노예야’라고 했겠습니다. 남의 의지에 맞춰온 40년 생활을 이제 마감하고 제가 하고 싶은 디자인을 하며 살고 싶어요.”
이번 전시에 선보인 호랑이 상품이 바로 ‘김현 독립선언’의 첫 결과물이다.
2010년 ‘호랑이의 해’를 맞아 20여 년 만에 ‘호돌이’를 다시 불러냈다. 호랑이를 소재로 한 우산, 넥타이, 머플러, 시계, 찻잔, 휴대폰, 노트북 등 다양한 문화상품을 디자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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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은 마음과 정신으로 하는 겁니다. 손은 표현을 마무리하는 도구일 뿐이죠. 안 예쁜 걸 예쁜 것으로 화장시키는 게 디자인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이들이 뜻밖에 많아 걱정스러워요.”
디자이너 김현은 이번 전시가 끝나면 한 달 쯤 암자에 들어가 디자인 인생 50년, 60년을 설계한다고 한다.


 

두개의 인터뷰 내용을 보다 보면 그가 우리나라 산업 디자인 산업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그 이면에 얼마만큼의 애정이 있는지 느껴집니다. 지금부터는 김현의 디자인 역사에서 중요한 터닝 포인트 몇개를 짚어 가며 우리나라 산업 디자인의 중요한 순간들과 연계 , 발전시켜 생각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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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김현은 76년 초, 경력사원으로 대우그룹에 입사해 84년 봄에 퇴사합니다.
그 당시 대우그룹은 거침없이 성장하는 기업이었습니다.
무역과 수출을 선도하다 보니 국내 소비자들을 상대로 하는 사업은 적은 편이었고 수출의 비중이 훨씬 컸습니다.
이 당시 대우그룹 산하 계열사가 40개가 넘었고 해외 지사도 삼성보다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룹 계열사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홍보, 광고, 디자인한 부서에서 다 진행했습니다.
그 당시 디자인 부서는 신문광고, 잡지광고, 포스터, TV광고, 편집디자인까지, 하지 않는 것이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10여명 이던 디자인실 직원이 60~70명까지 늘어났습니다. 그 당시 대우 내 가장 중요한 비중을 맡았던 것이 그룹 홍보였습니다.
김현 디자이너는 그룹 이미지 광고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입사하자마자 일러스트레이션을 이용해 시리즈 광고를 제작했으며 그 이후에도 기업 홍보 광고를 테마 하나 정해놓고 몇 년씩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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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어린이가 나무토막으로 집 짓기 놀이하는 사진을 중심에 두고 대우그룹의 건설 현장 사진을 맨 밑에 작게 처리하는 광고가 무역, 건설, 전자, 금융 등등에 각기 다른 컨셉트로 적용되 시리즈로 나갔습니다. 그런 식으로 테마를 하나 잡으면 몇 년씩 갔습니다.
김현 스스로도 이러한 작업들은 어려운 일이었지만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을 다잡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털어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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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이 한창 활동할 당시의 디자이너들은 포스터면 포스터, 편집이면 편집으로 각각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범위가 컸고, 디자인 비즈니스로써 가장 사업성이 뚜렷한 편이었습니다.
팀을 운영한다든가 수익 면에서 많은 도움이 되는 일이었고, 또 남보다 빨리 접할 수 있는 분야였습니다.
그래서 당시로는 자연스럽게 아이덴티티 분야에 몸담게 되는 디자이너들이 많아졌습니다.

김현이 말하기로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로 요약된다고 합니다.
아이덴티티 디자인이란 결국 ‘나는 누구인가’를 규명하고 앞으로 더 좋은 나를 만들기 위한 작업이라는 말입니다.
‘나’는 개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제품, 브랜드, 기업으로 바꿔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말을 기업으로 바꾸면 우리 기업은 어떤 기업인가, 장단점은 무엇이며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경쟁자는 누구이며 그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또 우리 기업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며 바람직한 모습은 무엇인가를 알고 확인하고 조정한 다음, 계획을 세워 소비자들에게 널리 알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김현이 생각하는 아이덴티티 디자인입니다.

또한 김현이 최고로 치는 디자인 철학은 ‘더 이상 뺄 것이 없다’고 생각되는 디자인 입니다.
그만큼 간단명료하고 단순한 것이 좋다는 말입니다. 제 생각에도 가장 단순하고, 군더더기 없고, 핵심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게 제일 보편적이며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김현의 경우 우리나라에 포스트모던이 제대로 안착되기 전부터 디자인을 시작한 사람이며 모더니스트적인 관점을 수용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유년기 시절부터 포스트모던한 환경에서 자라온 지금 세대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디터람스나 김현이 말하는 절제의 미학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기에는 조금은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때로는 제대로 된 컨셉을 이행하기 위한 과한 장식이 필요할 때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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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두 가지 아이덴티티는 김현의 디자인 성향을 잘 나타내는 대표작입니다.
왼쪽의 청정원 BI는 자연주의, 깨끗함, 산뜻함을 기본 컨셉트로 가져갔습니다.
앞서 인터뷰에서도 이야기 됐던 바 있는 미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맑고 깨끗한 자연적인 이미지로 탈바꿈하는데 성공해 높은 매출로 이어졌습니다.

오른쪽의 샘표 CI작업은 ‘간장’ 중심의 한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종합식품회사로서 아이덴티티를 강화하고 현대적 이미지를 보완하기 위해 현대적인 색감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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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이미지는 샘표 CI의 현대적 발전 과정입니다. 1990년대 뚜렷이 나타났던 우리나라 CI의 트렌드중 하나인 한자와의 혼용에서 느껴지는 미적 보수성을 과감히 단절하고 세련된 육각형 안에 모던한 한글로 ‘샘표’라고 씁니다.
샘표는 국내 최장수 상표로 지난 1954년 처음 등록됐습니다. 초창기 CI는 36년간 사용돼 오다가 지난 2000년 이후 현재의 형태로 바뀌었습니다.

사실 제 생각에 샘표같이 우리나라의 몇 안 되는 장수 브랜드 (제품이 너무 유명해져 기업명으로 탈바꿈된 경우)들이 기존의 수십 년간 이어오던 정체성을 간단히 버리고 현대적인 외형으로 탈바꿈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생각이 듭니다. 이유는 맹목적인 트렌드의 추구라는 측면에서 입니다. 하나의 브랜드라는 것은 시간이 축적되면 될수록 개인적인 기억이나 추억을 담을 수 있는 일종의 ‘공간성’이라는 것이 생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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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샘표간장’ 같이 오래되고 우리 삶에 밀접한 제품들이 가지는 기억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대개 개인적인 추억일것이라고 생각 됩니다만 그런 작은 기억들과 추억들이 모여 커다란 사회적 생각을 만들어 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기업의 윤리의식이라는 것이 자본을 바탕으로 하는 산업사회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의 생일에 어머니 보다 조금 빨리 일어나 서툰 솜씨로 미역국을 끓이며 간장으로 간을 맞추던 기억, 돈이 없던 학생 시절에 간장과 깨소금으로 밥을 비벼 먹던 유년기의 기억은 CI의 색이나 형태적인 가치로 좋고 나쁨을 가를 수 있을 만큼 단순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역사성이 깊은 CI의 변화를 시도할 때 모던한 외형 너머에 있는 소수의 소중한 기억들을 될 수 있으면 흘리지 않고 가득 담아 세월의 다리를 건너야만 비로소 좋은 디자인, 좋은 아이덴티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이너 김현은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사람마다, 조직마다 추구하는 이상향이 다르며 성취하고 싶은 목적 의식도 다른상태에서 정답은 있을수 없습니다.
결국 진실성을 바탕에 두고 신뢰를 쌓아가야 합니다. 정말 평범한 대답이지만 그 이상의 방법은 없는듯 합니다.
클라이언트가 갑이니까 무조건 ‘YES’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계속 듣기 좋은 소리만 하면 오히려 신뢰성은 반감됩니다.
진실성을 기본으로 일관되고 확실하게 얘기해줘야 상대도 나를 믿고 진정한 신뢰가 쌓입니다.
그래야 진짜 이야기가 가능해집니다.
진짜 이야기라는 것은 별게 아니라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작업입니다.
이것은 분명 쉬워 보이지만 모든 디자이너들이 겪는 공통된 숙제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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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생각하기에 위의 두 가지 아이덴티티 작업은 김현이 앞서 말한 클라이언트와의 신뢰관계에서 비롯된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됩니다.
왼쪽의 농협 로고부터 이야기 해보면 향토색이 짙은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던 기존의 농협이 브랜드 포지션을 글로벌 지향으로 옮겨 놓기 위한 대대적인 리-브랜딩을 꾀했습니다.
그래서 농협이 강화하고 싶은 금융, 유통 부분의 대형화, 글로벌화에 대응하기 위해 디자이너 김현은 왼쪽과 같이 디자인했습니다.
그 결과로 농협은 기존의 향토적이고 편안한 느낌을 대신해 보다 글로벌적인 커뮤니케이션 브랜드 “NH”로 거듭났습니다.

우측에 있는 한국도로공사의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한국도로공사의 핵심 키워드인 ‘expressway’와 공사의 지향가치인  ‘excellence’,’expert’,’exciting’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브랜드 ‘ex’를 시각화함으로써 사업영역의 대표성과 핵심가치를 강하고 임팩트 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디자인에서 보이는 텍스트와 텍스트의 겹침을 이용해 ‘길’이라는 시각적 상징을 메타포로 삼아 직관성을 높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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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20주년 기념 광고 시리즈 ‘카멜레온편’>

디자이너 김현이 이렇게 오래도록 롱런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디자이너들에게 변화라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환경의 변화에 맞추지 않으면 도태되는 거니까. 지금의 변화에서 내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빨리 적응할 수 있는 것, 다양한 디자인 분야 가운데 내가 어느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은지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세상의 변화에 휘둘리지 않고 변하기가 가장 중요하다.’

저는 디자이너 김현에 대해 쓰면서 한가지 부러운 점이 있습니다.
어떠한 시각체계에 정체성을 부여해 주는 일을 평생동안 해온 그는 매시간 매초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물음을 던지지 않았을까요?
진실로 ‘주체적인 삶’이란 명확한 해답을 가지고 움직이는 똑똑한 상태라기 보다는 끊임없이 결핍에 허덕이며 자신에게 수 많은 물음을 던지는 불안한 상태가 아닐까 합니다. 여러분은 오늘 자신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고 몇 가지나 대답할 수 있었나요?

 

– 가치디자인그룹 SY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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