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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디자이너들이 가장 존경하는 디자이너 하라켄야와 일본의 디자인 이야기

하얀 설원 위에 한 사람이 덩그러니 서 있습니다. 거기다 무심하게 죽 그어진 수평선 우측으로 정갈하게 세로쓰기 된 네 글자는 오늘 소개할 하라켄야의 디자인 철학을 잘 대변하는 장면입니다. 금주는 아시아 기획편 네 번째로 디자이너들이 존경하는 디자이너 하라켄야와 일본의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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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켄야는 그래픽디자이너이며 무사시노미술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기도 합니다.
디자이너들이 가장 존경하는 디자이너로 매번 손꼽히는 하라켄야는 어떠한 측면 때문에 그렇게 존경을 받는 걸까요?
여러 가지 측면이 있겠지만 제 생각에는 “일상”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1976년, [일상의 디자인전]이라는 전시회가 유겐트스틸의 중심지였던 독일의 다룸슈타트에서 개최되었습니다.
당시, 독일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 병따개, 자전거 타이어, 물컵 등을 전시하여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이었습니다.
(이 당시만 해도 일상의 도구들을 전시한다는 것은 감히 생각지도 못하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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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2006년, 일본의 액시스 갤러리에서는 [슈퍼 노멀]이라는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위의 책은 후카사와 나오토와 재스퍼 모리슨이라는 두 명의 제품 디자이너가 만든 책입니다. 아래에 등장하는 이론적인 부분들은 이 책에서 대부분 인용했습니다.)

 

 

슈퍼 노멀전은 일상생활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디자인의 제품들, 200여개를 제시하는 전시회였습니다.
슈퍼마켓 장바구니, 연필, 우유병, 숟가락, 젓가락, 식당용 물컵, 재떨이, 클립, 플라스틱 옷걸이 등이 전시되었는데, 이들 물건은 너무도 일반적이어서 독창성, 특이함, 탁월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평범한 이들의 생김새를 유심히 관찰해 보면, 그것들이 가진 평범함 속에 지극히 뛰어난 디자인적 가치가 내재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를 [슈퍼 노멀]이라고 명명하고 있습니다.
누가 보아도 특정 브랜드나 특정 디자이너의 작품이 아니고, 우수해 보이지도 않으며, 그것을 일상생활에서 무심하게 잘 사용하고 있다면, 그 디자인은 [슈퍼 노멀]이라고 불릴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래는 슈퍼 노멀에 해당하는 디자인들의 예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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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 마사히코 ‘출입국 확인 스탬프’>

해외 방문 시 여권에 찍히는 스탬프들은 사각이나 원형의 프레임으로 대부분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고 특별하지도 않은 도장들이지만 우리는 이 도장을 찍음으로써 그 나라와 첫인상을 맺습니다.
그런 점에서 스탬프 디자인은 상당히 가치 있는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팬시 용품의 스탬프가 아니라 좋은 ‘의미’를 담고 있는 스탬프이기 때문입니다.
비행기의 방향만으로도 입국ㅡ출국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으며 이 스탬프 하나를 통해 일본을 방문하는 수많은 여행객들에게 신선한 인상을 심어주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일본을 처음 방문하는 외국인이 하루 5만 명이라고 가정한다면 ‘이는 일본인들이 재미있는 생각을 했구나.’라는 긍정적인 인식을 하루 5만 개나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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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게루 반 ‘네모 휴지’>

시게루 반은 건축의 소재로 종이를 사용해 종이 건축을 선보이며 친환경적 소재의 사용과 난민을 위한 건축을 선보이는 건축가입니다.
휴지가 네모인 이유는 공간의 효율적 증대와 소비감소 때문입니다.
동그란 휴지보다 네모난 휴지가 빈 공간이 적기 때문에 공간 효율이 당연히 높아집니다.
동그란 휴지는 휴지를 뜯을 때 받는 저항이 거의 생기지 않기 때문에 생각보다 휴지의 낭비가 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네모난 휴지는 한 칸의 휴지를 뜯을 때마다 생기는 저항으로 인해 휴지를 소비하는 데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유를 만듭니다.
디자인이 단순히 편리함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원이 사각이 되는행위만으로도 자연을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힘을 가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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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켄야 ‘마쓰야 백화점 리뉴얼 지퍼 프로젝트’>

하라켄야의 마쓰야 백화점 리뉴얼 공사 가림막 디자인 입니다.
공사 기간 동안 지퍼가 조금씩 열리는 형태로 리뉴얼에 대한 기대감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키 위한 마케팅 전략입니다.
막상 리뉴얼이 끝나고 나면 없어질 이 가림막 하나에도 세심히 들어간 디자인은 결국, 기업전략의 새로운 시각을 마련하는 좋은 방편으로 변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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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슈퍼노멀의 특별함을 일본의 전통적인 미의식을 드러내 주는 용어로 ‘와비사비(侘寂)’와 ‘슈타쿠(手澤)’라고도 표현합니다.
‘와비사비’는 어떤 물건이 시간이 가면서 갖게 되는 고요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실용적인 미를 통달한 이후에 나타나는 아름다움입니다.
물건을 오래 사용하다 보면 물건 속에 깃든 혼이 자연스레 진가를드러내고 광채를 나타냅니다.
‘슈타쿠’는 ‘손으로 윤을 낸’이란 뜻입니다.
사용하면서 자연스레 만지고 또 만지다 보니 윤기가 흐르게 된 것을 가리킵니다.
모두가 시간이 지나가면서 발생하고 또 얻게 되는 아름다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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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풍화작용 속에서도 남아 있는 아름다움이라면 장식적이라기보다는 기능적인 아름다움일 수밖에 없습니다.
슈퍼노멀은 한번 쓰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하게 되는 것이고, 그런 과정에서 사용자와 일종의 일체감을 얻게 됩니다.
주방의 도마가 그렇고 병따개와 스탠드 옷걸이, 종이클립과 디지털카메라가 그렇습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 생활의 일부로 늘 우리 곁에 존재하는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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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노멀은 우리가 무언가를 사용할 때 나타나는 아름다움의 메아리입니다.”(후카사와 나오토)
“슈퍼노멀은 즉각적으로 인지되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다른 수준의 아름다움에 대한 논의와 관계있다고 봅니다. 즉, 알아차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사용하다 보니 아름다워지는 아름다움, 매일 일상에서 느끼는 아름다움, 볼품없지만 실용적이고 오래가는 아름다움 말예요.”(제스퍼 모리슨)

이런 슈퍼노멀이 왜 새삼 주목받고 있을까요?
그것은 저자들의 지적대로 새롭거나 아름답거나 혹은 특별한 것을 고안해내는 것이 디자인이라는 전통적인 사회 통념에 정면으로 부딪치는 도전이기 때문입니다.
디자이너는 흔히 기존의 것을 개선하고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지만, 그러한 과도한 의욕은 기존의 좋은 디자인마저 무시하거나 간과하도록 만듭니다.
새롭고 획기적인 것을 기대하는 입장에서라면 이미 알고 있고 오래 쓰고 있는 물건들이 평범하고 추하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즉 노멀만 보고 노멀 안의 내제된 슈퍼노멀의 가능성은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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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관점에서 보면, 일본의 디자이너들이 주창한 슈퍼노멀은 즉각적인 지각에 맞서 우리의 지각을 새롭게 갱신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본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미학론과도 닮아있습니다.
슈퍼노멀은 ‘이론’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이미 알고 있던 것을 새롭게 자각하는 것”이 슈퍼노멀이라면, 그것은 “지각을 어렵게 하고 지각에 소요되는 시간을 연기시킴으로써 지각의 과정 그 자체가 미학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러시아 이론가 슈클로프스키의 입장과 먼 거리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차이는 있습니다.
형식주의 예술론에서는 지각과정을 지연시키기 위해 대상을 ‘낯설게 하는’ 예술적 기법과 예술가의 창조적 개입이 중요하지만, 슈퍼노멀은 그런 ‘창조적 자아’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즉, 유명한 디자이너나 창작자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곧 슈퍼노멀은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하므로 누가 만들었을까란 궁금증도 갖게 하지 않습니다.
디자이너의 생각과 예술가의 손길을 관심 대상에서 지워버리는 것이 바로 슈퍼노멀의 고유한 특징이기도 합니다.
특별한 기교나 장인의 솜씨 없이도 특별해질 수 있다는 것, 가장 평범한 것이 비범함을 품고 있다는 슈퍼노멀의 발견은 일상 속에 파묻혀 지내는 우리를 뿌듯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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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하라켄야가 가지는 생각은 모더니스트들의 생각과 비슷한 측면이 많습니다.
첫째는 의미를 오롯이 전달 시키기 위해 장식을 배제 하며 철저히 기능중심적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디자인은 사회를 위한 수단이어야만 하지 예술적 실천을 위한 수단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는 미래파, 구성주의, 얀치홀트의 신타이포그래피 더 나아가서는 스위스 인터네셔널까지 공유하는 가치들입니다.
하지만 하라켄야는 초기 모더니스트들과의 변별성을 적극적 상업 디자인으로의 개입에서 그 선을 긋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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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하라켄야의 디자인은 상업디자인에 대한 폭로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무인양품(MUJI)의 시각은 독특합니다.
유통과정의 공개와 함께 싼 가격에 공급되는 질 좋은 상품들에서 하라켄야는 마케팅의 범주를 넘어선 독특한 미의식을 재고시킵니다.
그것은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 비움의 전략이라고 부를 수 있을법 한 것입니다.
무인양품에서 사용한 비움이라는 메타포는 일본이라는 국가성을 새롭게 디자인하기도 했습니다.
광활한 공간안에서 덩그러이 놓여진 인간. 그것은 태초의 인간이기도 하며 다양한 사람들에 둘러 쌓여진 근대인의 고독함 같기도 합니다.
무지의 브랜딩이 예술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인간에 대한 깊은 관심에서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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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라는 브랜드가 우리에게 전달해준 가능성은 상업 디자인 안에서 자기 폭로적 수법을 통해 상업 디자인에서도 정신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측면입니다.
더 이상 소비자들은 일방적으로 받는 정보에 의존하지 않으며 능동적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프로슈머(Prosumer) 정신에 근거하여 정보를 다룹니다. 프로슈머란 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를 합성한 말입니다.

이는 소비자가 소비는 물론 제품개발, 유통과정까지 직접 참여하는 생산적 소비자로 거듭난다는 의미입니다.
디지털시대 프로슈머는 보다 직접적이고 때로는 과격한 방법으로 자신의 의견을 반영합니다.
인터넷을 통해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하고 불매운동이나 사이버 시위도 서슴지 않습니다.
그러한 능동적인 소비자들이 개입하기 용이한 하라켄야의 비워져 있는 공간은 소비자와 디자이너가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소통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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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에 대한 하라켄야의 디자인 철학을 잘 나타내는 인터뷰가 있어 인용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Q : 하라켄야씨 당신의 작품에서 흰색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A : 흰색은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재는 보는 이의 감각이 낳은 것입니다. 만약 보는 이가 그것들을 흰색으로 인지한다면 나의 의도는 그만큼
성공한 것입니다. 결국, 그것은 관찰자의 기억 속에 더욱 강하게 새겨져 있는 흰색에 관한 경험입니다.

Q : 컬러와 재료의 관계를 어떻게 보십니까?
A : 글쎄요, 저는 그래픽 디자이너입니다. 그래서 저는 색채가 어떤 효과가 있다고 믿을 때 색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만약 그것들이 필요치 않다면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디자인은 이런 차이를 통제하는 것입니다. 나는 늘 그런 식으로 작업을 해왔으며 지금은 작은 차이는 큰 차이보다 낫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것은 미묘하고 강력한 인상을 만듭니다.

Q : 당신이 이번에 디자인한 무인양품 패키지에서 다양한 흰색 블라인드와 투명한 셀로판지를 사용했습니다. 어떤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것입니까?
A : 흰색은 존재하지 않는 색이며 동시에 공허한 색입니다. 공허함은 빈 배와 같습니다. 그 공허함은 만짐으로 느낄 수 없는 거대한 상상을 흡수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합니다. 제가 반문 하지요, 소통의 성공은 많은 말을 수반합니까? 뜻밖에 소통의 성공은 기침 한 번 혹은 둘 사이의 고요한 적막에서 성공하는 때가 의외로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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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디자인을 하면서 다양한 여백과 대면하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작업을 시작할 때 만나게 되는 흰색 캔버스에서 유독 알 수 없는 공포심을 느낍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는 흰색 캔버스가 가지는 심리적 공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흰색 캔버스 앞에 섰을 때 느껴지는 공포심은 사실 창작에 대한 부담이나 새로운 것의 기피심 보다 과거로부터 차곡차곡 쌓인 무수히 많은 창작의 클리셰들이 보이지 않게 흰색 캔버스를 점령한 탓이다.’

어쩌면 흰색 캔버스의 여백에서 느껴지는 저의 공포심은 창작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보다 클리셰들을 피해 가기 위한 체력적 소진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작하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여백에 대한 자기 철학 내지 사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백은 리듬감이 될 수도 있으며, 그리드가 되기도 하고 뭐든지 넣을 수 있는 함수가 되기도 하며 때로는 꽃이 되며 어떨때는 잊혀지지 않는 첫사랑의 얼굴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시간이 된다면 함께 디자인하시는 분들의 여백에 관한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네요.

– 가치디자인그룹 SY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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